[한마당-손수호] 김태원, 저작권 홍보대사
입력 2010-04-29 21:14
지난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0회 세계지적재산권의 날’ 기념식에는 다소 이색적인 장면이 있었다. ‘국민 할매’로 불리는 김태원씨가 저작권 홍보대사로 위촉된 것이다. 아니, 대마초를 피워 철창 신세까지 진 연예인이 정부 기관의 활동을 홍보한다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김태원이 누구인가. 록 그룹 부활의 리더이자 카리스마 가득한 실력파 기타리스트다. 25년 넘게 부활을 이끌면서 1986년 ‘희야’를 시작으로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낸 대중음악계의 전설이다. 오늘날 활동하는 뮤지션 가운데 그의 음악적 세례를 받지 않은 이가 없다.
최근 들어 김태원은 4차원의 예능인으로 거듭났다. 정통 개그맨도, 신세대 아이돌도 아니면서 예능의 강자가 된 것은 그의 독특한 언행 때문이다. 과거의 신비스런 이미지 대신 특유의 묶은 머리에다 솔직담백한 고백이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마약은 위나 장이 망가지는 게 아니라 뇌가 갑니다” “밤에는 만취, 낮에는 숙취”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망가지는 내용이 다는 아니었다. 작곡을 둘러싼 소회가 그렇다. “나는 표절의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남의 노래를 일부러 듣지 않는다” “많은 음악인들이 표절인 줄 알면서도 적당히 넘어간다.” 저작권위원회 쪽 사람들은 이 대목에 창작자의 진정성이 있다고 보고 과감히 홍보대사를 제안했고, 망설이는 그를 채근해 수락을 받아냈다.
그는 위촉식장에서 창작자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표절의 기준은 양심이다. 잘못된 곳 한두 군데 바로 잡는다고 완치되지 않는다. 때문에 오늘이, 그리고 내가 저작권에 대한 의식 제고에 작은 불씨가 됐으면 좋겠다.” “창작하는 분들께 사색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김씨는 얼굴과 말로 홍보대사 역할을 끝내지 않았다. 이날 직접 가사와 곡을 쓴 캠페인 송 ‘지켜야 합니다’를 발표한 뒤 음악저작권을 양도했다. 노래 가사에는 ‘저작권’이라는 말 한 마디도 없었지만 울림은 크다. “생각의 날개를 펴도록∼꿈과 희망과 용기의 얘기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지켜야 합니다∼누군가의 생각과 얘기들을 지켜줄수록∼아름다움을 서로 간직할 수 있는 걸 알기에∼”
바닥을 탈출한 김태원의 변신이 눈부시다. 탕아의 부활을 보는 듯 하다. 그의 아슬아슬한 다음 행보, 인생 3막이 궁금해진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