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 군수’ 민종기의 엇나간 말로… 고양이에 생선 맡겼다

입력 2010-04-29 20:39


당진군수의 재임 6년

“아 그거 꺼버려. 짜증나는데 왜 자꾸 틀어.”

“놔둬 봐,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봐야 할 거 아녀.”

지난 27일 오전 7시 충남 당진의 한 해장국집. 일터에 가기 전 아침을 먹으려고 들른 김영훈(55), 서청현(56)씨가 TV뉴스를 보다 실랑이를 했다. “잠적한 민종기 당진군수의 행방이 사흘째 묘연하다”는 앵커 멘트가 흘러나온 뒤였다.

“에라, 내가 ‘민똘’ 그럴 줄 알았어. 온갖 법 다 어기더니 벌 받기는 싫었나보지.” 김씨가 민 군수를 ‘또라이’라 부르며 언성을 높이니 서씨는 “CEO(최고경영자)형 군수 좋아하네, 조폭형 군수겄지”라고 받았다.

민 군수는 감사원 감사에서 비리가 적발되자 지난 24일 위조여권을 들고 인천국제공항에 갔다. 중국 칭다오(靑島)로 출국하려다 제지당해 잠적한 뒤 나흘 만에 검거됐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여권을 위조해 해외로 도피하려던 초유의 일이다.

현대제철 동부제철 동국제강의 ‘제철 3형제’를 당진에 안착시키며 CEO 군수로 불렸고, 6·2 지방선거 당진군수 후보 지지율에서 독보적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일 하나는 ‘불도저’처럼 잘한다던 군수에게 지난 재임 6년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경기남도’ 당진

2001년 12월 서울과 전남 목포를 잇는 서해안고속도로가 완공됐다. 서울과 당진이 자동차로 불과 1시간 거리가 됐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국토균형발전을 내걸고 수도권 공장 증설을 규제했다. 기업들이 일제히 남하해 대(對)중국 교역창구인 당진항 인근에 속속 집결했다.

당진군도 2005년 ‘기업유치팀’을 정식 발족시키고 수도권에서 밀려난 공장 영입에 나섰다. 군내 공장을 가진 기업은 2004년 159개에 불과했지만 이후 836개가 유치돼 현재 1000개에 육박하고 있다. 같은 기간 인구는 11만8000여명에서 14만3000여명, 지방세 수입은 272억원에서 803억원으로 증가했다.

당진군 올 예산은 5580억원(추가경정예산 포함)이다. 군 관계자는 “충남 16개 시·군 가운데 예산 규모는 천안시 아산시에 이어 3위”라고 말했다. ‘충남’ 당진이 아닌 ‘경기남도’ 당진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했다. 수도권 못지않게 서울과 가깝고 돈과 사람이 몰린다는 뜻이다.

그러자 부동산이 들썩이며 개발 열풍이 불었다. 조용한 행정가 스타일의 김낙성(자유선진당 국회의원·당진) 군수가 총선 출마를 위해 2004년 군수직을 내놓았을 때 군민들은 술렁였다.

“우리도 부자 한번 돼보자.” “다음 군수는 큰일 한번 해야지.” “누구래? 그 사람은 소문이 좀 안 좋다던데….” “그래도 탱크 같은 군수가 와야 돈도 좀 만지지.” 당진군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한 공무원은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런 바람을 타고 등장한 이가 민 군수다. 논산(1995∼1997)과 천안(2002∼2004) 부시장을 거치며 강력한 추진력으로 ‘불도저’란 별명을 얻었던 그는 2004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진군수가 됐다. 그리고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재차 군수직에 올랐다.

군민의 분노

“다 어디 갔어? 너도 돈 받아먹었지?” 같은 날 오후 2시쯤. 당진군청 2층 부군수실에 한 노인이 고함을 지르며 들어섰다. 군수실 문이 잠겨있자 권한대행인 부군수실에 온 것이다. 기자를 보곤 이렇게 말했다. “기자 양반, 이리 와서 얘들 좀 다 집어넣어. 내가 이런 애들을 어떻게 믿고 살아?”

당진 토박이라는 그는 민 군수 비리 소식에 화가 나서 따지러 왔다고 했다. 군 공보팀 관계자는 “사건 터지고 이렇게 오는 분들이 많아요. (한숨) 어쩔 수 없죠” 하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런 분노를 가장 피부로 느끼는 군 공무원들은 식사를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있다. 평소 200인분을 준비하던 구내식당은 이번 주부터 300인분으로 늘렸지만 끼니마다 바닥이 난다. 감사법무팀 관계자는 “퇴근 후 술자리도 사라졌고 집 밖에도 잘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감사원이 발표한 민 군수 비리 내역은 이렇다. 4년간(2005∼2008년) 102억원대 공사 7건을 관내 한 업체에 몰아주고 3억원대 별장을 뇌물로 받았다. 다른 업체에는 주택건설 사업계획을 승인해주고 2006년 11월 처제 명의로 3억원대 아파트를 챙겼다. 2008년 2월, 570억원대 새 청사 시공업체 선정에선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줬다. 내연녀인 부하 직원에게는 3억3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사 주고, 10억원대 비자금 관리도 맡겼다.

감사원은 민 군수와 군 공무원 3명, 업자 7명의 수사를 검찰에 의뢰했다. 수사 대상 공무원 3명은 모두 계장급(6급)이다. 그 중 한 명은 내연녀인 부하 직원으로 이미 퇴직했고, 2명은 근무 중이다. 군 관계자는 “누가 수사의뢰 됐는지 군민들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하루에도 몇 통씩 욕하는 전화가 걸려온다”고 전했다.

마당발 로비

“시(市) 승격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민 군수는 2004년 취임 일성으로 당진군의 시 승격을 자신했다. 특유의 스타일로 밀어붙였다. 그의 ‘불도저 행정’이 실체를 드러낸 건 2008년이다.

군이 시가 되려면 인구 15만명을 넘어야 한다. 2008년 당시 당진군 인구는 13만9000여명. 시민단체인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가 밝혀낸 민 군수의 인구 늘리기 전략은 ‘위장전입’이었다.

그는 군 공무원 1인당 20명씩 전입시키도록 할당했다. 원룸 하나에 여성 40명이, 문예회관에는 대학생 300여명이 주민등록을 두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 일로 민 군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 조상연 사무국장은 “당시 수사검사로부터 ‘민 군수 발이 워낙 넓어 온갖 곳에서 전화가 온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 사건을 취재했던 방송사 PD도 ‘우리 회사 수위까지 (방송을 자제해 달라는) 로비 전화를 걸어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당시에도 민 군수가 열흘 정도 잠적했었다”고 덧붙였다.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진군수에 당선된 민 군수는 정권이 바뀌자 2008년 3월 통합민주당을 탈당했다. 1년10개월 무소속으로 지내다 감사원 감사가 시작된 지난 1월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20일 민 군수를 6·2 지방선거 당진군수 후보로 공천했다가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되자 이를 취소하고 당진군수 후보는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민 군수는 지난 2월 조 사무국장을 만나 “감사원이 음해성 투서로 감사를 진행한다.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그러나 감사 결과 발표 이틀 만에 위조여권 도피행각을 벌여 억울하다던 주장은 신빙성을 잃게 됐다.

그가 위조한 여권은 군내 건설업자 손모(56)씨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민 군수가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을 시도하던 당일 출입국사무소로부터 위조여권 사본을 팩스로 건네받아 수사에 착수했었다.

군수가 발주한 공사, 군의원이 시공?

당진군에도 군정(郡政)을 견제할 군의회가 있다. 당진군 의원은 비례대표 2명을 포함해 12명. 한나라당 6명, 자유선진당 6명으로 절묘하게 여야 균형이 맞춰져 있다. 민 군수 문제가 이렇게 될 때까지 이들은 뭘 한 걸까.

지난 26일 만난 충남의 한 건설회사 대표 A씨는 “군의원들도 대부분 건설 토목 쪽 사람들”이라며 “각종 공사에 따라오는 떡고물 앞에선 당적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군의원 12명 중 본인 또는 친인척이 건설·부동산·운수업자 출신인 경우가 모두 8명이라고 전했다. 또 군의원 절반 이상은 각종 체육회 등 관변단체 출신이다. 조 사무국장은 “군이 올해 체육대회 등 단체 행사 예산만 80억원 이상 배정했다”고 말했다.

군의회 ‘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2005년 당진군 의장 김모(61)씨와 의원 조모(50)씨가 부동산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3월 최모 의원이 알선수뢰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다른 최모 의원도 지난 1월 면세유 횡령 등 혐의로 2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조 사무국장은 “(제철소 유치로) 지역 건설 경기가 급속히 살아나면서 웬만한 유관업체는 대부분 혜택을 입었다. 대부분 건설업자인 군의원들이 이를 감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비리가 적발된 전·현직 군의원은 대부분 6·2 지방선거에도 입후보했다.

검찰은 지난해부터 민 군수의 비리 정황을 포착하고 내사를 벌여왔다고 한다. 그러다 감사원이 민 군수 비리를 상세히 기록한 투서를 받고 감사를 시작하자 결과를 기다려왔다. 대전지검 서산지청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검찰과 경찰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다른 공무원과 군의원 등이 연루됐는지도 샅샅이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6·2 지방선거를 위해 마련했던 민 군수 선거사무소 외벽에는 지금도 ‘한번 더 맡겨 달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한 선거운동원은 “조만간 사무실을 폐쇄할 것”이라고 했다.

선거사무소 민 군수 책상 위에는 모 시사주간지와 할 예정이던 인터뷰용 답변 자료들이, 밑에는 급히 ‘떠날 때’ 미처 챙기지 못한 듯 말끔히 닦인 그의 구두 두 켤레가 번쩍이며 놓여 있었다.

당진=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