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사진으로 남다… 첫 호 주인공 이석주씨 안타까운 ‘영면’
입력 2010-04-29 17:48
지난 25일 서울 하계동 을지병원 영안실. 1년7개월 투병 끝에 아들이 떠났습니다. 그간 너무 많이 운 어머니는 빈소에서 통곡하지 못하고 실신했습니다. 상주 자리에는 여동생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오빠를 꼭 닮은 동생 앞에서 위로의 말 같은 건 하지 못했습니다.
말기 간암으로 투병하던 사진작가 이석주씨가 24일 새벽 1시 세상을 떴습니다. 주말섹션 And가 2009년 11월 20일자 첫 지면을 만들며 표지에 실었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29세란 나이와 말기 간암의 어울리지 않는 만남을 ‘스물아홉, 왜 나일까…’란 제목에 담았습니다(사진).
충남 당진의 폐가에서 요양하던 석주씨가 서울 시흥5동의 한 의료센터로 구급차에 실려 왔다는 얘기를 들은 게 23일입니다. 그 병실에 혼자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이틀을 미룬 병문안은 이제 영영 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의료센터에 온 지난 16일부터 8일간 많은 이들이 찾아와 그와 작별했습니다. 친구와 동료가 다녀갔고, 친분 있는 사진작가들은 전시회를 약속했습니다.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석주씨가 전시회 얘기에 오랜만에 웃었다고 합니다. 헤어졌던 여자친구도 왔습니다. “너무 늦게 와 미안하다”는 여자친구는 그가 병실에서 맞은 마지막 사람이 됐습니다.
올해 그는 서른 살입니다. 30년 인생. 짧지만 가벼웠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온몸에 암세포가 가득 퍼진 채 참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지난해 인터뷰에서 석주씨는 “일본 홋카이도로 사진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꼭 가시라”고는 했지만 돈도, 건강도 여의치 않아 보였습니다.
죽음을 채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지난 2월, 그가 13일간 홋카이도와 아키타현에 취재여행을 다녀왔다더군요. 그때 찍어온 사진 300여컷은 유작이 됐습니다. 그 중 100여컷은 6월 출간될 사진 에세이 ‘홋카이도 러브레터’(가제·미래인)에 담기게 될 것입니다.
사진은 온통 눈(雪)뿐이었습니다. 눈에 표정이 있다는 걸 그의 사진을 보며 알게 됐습니다. 날리고 퍼붓고 떠다니는 눈. 그 눈을 동경했던 석주씨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홋카이도 삿포로와 오타루의 눈밭에서 행복했을 그를 상상해봅니다.
하계동 임대아파트에 어머니 김유순(54)씨와 여동생을 남기고 떠난 석주씨의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카메라 메고 좋은 곳에서 영면하길 기도합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