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지능의 10%만 쓴다’?… ‘유혹하는 심리학’
입력 2010-04-29 17:35
유혹하는 심리학/스콧 릴리언펠드 외/타임북스
“과학은 ‘미신’, 그리고 미신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쓴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1902∼1994)의 말이다.
과학적·합리적 근거가 없는데도 사실인 것으로 믿는 미신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인간의 마음을 탐구해 온 심리학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심리학 지식 중에는 사실이 아닌 것이 상당수다.
‘유혹하는 심리학’은 우리를 현혹하는 심리학적 주장들이 진실인지 여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미국 임상심리학회 회장을 지낸 스콧 릴리언펠드 에모리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등 4명의 심리학 전문가들은 수천 건의 서적과 논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심리학적 주제 50가지에 대한 검증을 벌인다. 뇌와 인식, 발달과 노화, 기억과 기억력, 지능과 학습, 의식과 사고, 정서와 감정, 대인관계와 인간의 사회적 행동, 성격과 자아, 정신적 질병, 범죄심리학, 심리치료 등의 주제를 망라해 심리학 분야의 익숙한 오해들을 낱낱이 해부한다.
오해들 가운데 하나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능의 10%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일반인은 물론이거니와 심리학 전공자들도 3분 1 정도가 사실이라 믿을 정도로 상식화돼 있는 그 같은 주장은 허구라는 것이다. 사고나 질병으로 뇌의 일부분만 잃어도 심각한 결과가 나타나는 사실 등을 들어 ‘10% 이론’을 반박한다. 또 ‘10% 이론’의 진원지로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인슈타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의 명성을 이용하려고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라고 논박한다.
‘아이에게 모차르트 음악을 들려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주장도 오해라고 단언한다. ‘모차르트 효과’는 1993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근거로 제시됐지만 과학적으로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갓난아기를 둔 부모들을 겨냥해 CD, 카세트테이프 시장 등이 급성장했지만 반복된 실험결과, 모차르트 효과는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보고됐다고 한다.
‘화를 참기보다 터뜨리는 편이 낫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노와 부정적 감정을 일소해 심리적 정화의 경험을 제공하는 카타르시스라는 개념을 얘기했고, 프로이트도 억압된 분노는 공격성으로 발전한다고 말했지만 많은 연구결과들은 그 같은 가설들이 잘못된 이론임을 검증해 준다는 것이다. 타인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도록 부추길수록 공격성은 더 강화된다는 사실을 연구결과들을 통해 증명한다. 울분은 화를 쏟아냄으로써 해소되는 게 아니라 분노의 근원을 밝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자들은 폭력 성향이 있다’ ‘심리치료를 위해서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문제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자살에 이르는 사람은 대부분 중증 우울증 환자들이다’ ‘사람은 자기와 정반대인 이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등 심리학계에서 상식처럼 통용되는 주장들에도 실증적 자료들을 근거로 공격의 메스를 들이댄다.
저자들은 “대중심리학의 유명한 신화들을 믿다가는 인간 본성을 잘못 이해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심리학의 갖가지 주장들을 평가할 때 우선 ‘상식을 의심해보라’고 설득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와는 반대로 믿기지 않지만 진실로 밝혀진 심리학의 발견 10여가지도 소개한다. ‘심각한 언어 상실을 초래하는 뇌의 좌측 전두엽에 뇌졸중을 겪었던 환자들은 뇌손상을 입지 않은 사람들보다 거짓말을 더 잘 탐지해 낸다’ ‘심리학자들은 비둘기를 가르쳐 모네의 그림과 피카소의 그림을 구별하게 하고, 바흐의 작품과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구별하도록 했다’ 등이 그것이다. 허황된 얘기같아 보이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발견들이라고 저자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대중심리학의 진실과 허구를 식별하도록 도와주고 심리학의 미신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문희경·유지연 옮김. 1만5000원.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