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은혜 (20·끝) “이 땅의 해군이여! 다시 일어서라”

입력 2010-04-29 17:21


“홍은혜 권사님은 소녀 같은 분입니다.” “권사님을 다락방에서 처음 뵈었는데, 저희에게 찬양을 가르쳐주시고, 피아노도 직접 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저 연세에 괜찮으실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기도에 권사님이 제일 먼저 나오시는 게 아니겠어요.” “남자는 어디서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권사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난해 자서전 ‘은혜의 항해’를 쓸 때 다락방 식구들은 이런저런 말로 나를 격려해줬다. ‘다락방 식구들이 본 홍은혜’란 제목으로 이들의 인터뷰 내용을 책 속에 수록했다. 그들은 나를 ‘열정적인 음악 선생님’ ‘인생의 멘토’로 기억해줬다.

마산의 미인, 해군가 작곡가, 초대 해군제독의 아내, 해군부인회 회장, 해군의 어머니…. 나에게는 매 시기 다양한 ‘이름’들이 붙었다. 모든 시기마다 소중한 추억들이 있고, 그때마다 불린 이름들이 모두 귀하지만 나는 지금 해군중앙교회 원로권사로서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

나는 하루하루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94세를 살아올 때까지 하나님은 내가 짐작하지 못했던 인생의 앞길을 한 걸음씩 인도해주셨다. 그렇기에 따로 염려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 그저 매일매일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면서 살 뿐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다시 한번 해군창설 때를 떠올려본다. 해군창설은 그야말로 사랑이 뭉쳐서 이룬 아름다운 기적의 역사다. 해방과 동시에 시작되었으니, 아무 것도 없던 그 시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겠는가. 그때는 왜 그렇게 유리창이 많이 깨졌는지…. 해군의 숙소는 유리창이 다 깨어져 없는 부둣가 근처였는데, 바닷바람은 세차게 불어오고 불도 없는 냉방에서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누런 담요 한 장씩을 갖고 새우잠을 자야 했다.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해군 대장이 장병들을 잔디밭에 집합시켰다. “그동안 해군을 건설하기 위해 수고가 많았소. 일이 많고 바쁘다보니 언제 고향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오늘 저녁 하늘 위의 저 달을 쳐다보며 부모와 처자식이 있는 고향을 떠올리며 실컷 울어봅시다.”

그러자 장병들이 “와” 하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한참 후 대장은 말했다. “내 나라의 해군을 건설하는 벅찬 열정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우리는 또 다시 독립운동을 하는 정신으로 해군을 건설해야 합니다. 다 함께 일어서십시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우리 해군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천안함 침몰로 46명의 꽃다운 청춘을 잃고 지난 한 달여 동안 대한민국 국민은 침통함 속에서 보냈다. 유가족의 고통을 보는 내내 나 역시도 많은 눈물을 쏟고 괴로웠다. 이제 서로의 눈물을 씻어야 하지 않을까. 천안함 장병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다시 한번 일어서야 한다. 마음과 뜻을 다하며 지금의 어려운 고비를 인내하며 넘겨보자. 신사다운 훌륭한 해군의 모습이 ‘건설’될 수 있도록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린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