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역 공개도 않고 징수기준도 모호… 손봐야 할 ‘R&D 기술료’
입력 2010-04-28 21:22
#사례1. A재단법인은 2004∼2007년 국가주도의 신기술 개발사업인 ‘21세기 프런티어연구개발사업’에 참여, 지원금 13억8200만원을 받고 작물 유전체 관련 기술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한 독일계 회사가 이 기술 상품화에 대한 대가로 14억5000만원을 선지급했다. 사업단은 이 중 3억원 남짓한 액수를 기술료 명목으로 정부에 냈다.
#사례2. B연구원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정부지원금 9억원으로 바이러스 특이효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최근 한 중소기업으로부터 에이즈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할 경우 10억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1단계 임상을 거쳐 3단계까지 끝내면 이 액수의 배에 달하는 금액을 받게 된다. 하지만 임상에 성공해 대가를 받더라도 B연구원은 정부에 기술료를 낼 필요가 없다.
민간 연구기관 등은 정부 지원을 통해 얻은 연구개발(R&D) 성과물을 기업 등에 양도해 수익을 올렸을 경우 그 일부를 국가에 지급해야 한다. 이를 기술료라고 한다. 하지만 관련 규정이 주먹구구다.
앞의 사례처럼 연구기관의 성격에 따라 기술료 징수 여부가 결정되는가 하면 납부비율 등 징수 규정도 부처별로 다르다. 징수된 기술료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 수 없는 등 사후관리가 부실하다. 예컨대 교육과학기술부의 출연사업으로 예산을 받았을 경우 수익의 30%를, 지식경제부는 40%를 기술료로 납부해야 하는 식이다.
특히 그동안 세입·출 외 수입으로 분류돼 국회 감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 등이 제기돼 지난해부터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내역을 보고하도록 했으나 정부는 이를 실행하지 않았다.
2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에 납부된 기술료는 총 2047여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1572억원이 R&D 재투자 등에 쓰인 것으로 돼 있다. 2008년 12월 징수 대상 등이 영리단체로만 한정되는 등 법률이 바뀌면서 기술료 징수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과거 연구 성과가 최근에 와서야 빛을 보기도 하고 R&D 예산도 계속 늘고 있어 앞으로도 기술료 징수는 증가할 것이란 관측이다. 올해 R&D사업 예산은 13조7000억원에 달하며 기술료 징수 대상인 출연사업에는 이 중 9조6285억원이 들어갔다. 때문에 들어간 예산에 비하면 기술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해석도 있다.
기술료와 관련된 규정이 체계적이지 않다 보니 체납된 기술료도 적지 않다.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 분야만 보더라도 지난 3월 2008년 기준으로 37개 과제 17억8300만원의 기술료가 납부되지 않았다. 그러나 규정이 애매해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
또 납부된 기술료를 부처별로 관리하다 보니 재정당국의 관리·감독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법률에 정확한 기준에 대한 언급이 없어 제대로 사용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과거에 이를 세입으로 구분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지만 실행되진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이를 국고로 받으면 결국 예산 부처에 다시 납부해야 돼 각 부처들로서는 자신들에게 이익이 없어지니 열심히 걷지 않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국회에 기술료 사용 내역을 공개하기로 돼 있었으나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