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병원 이수찬 원장, 10년 넘게 치료한 환자들과 편지대화
입력 2010-04-28 18:20
“중·고생 두 아들 녀석이 초등학생 때는 아빠 생일이라고 들썩대며 준비하고, 축하해 주더니 사춘기가 되면서 그런 게 없어지더군요. 이 때만큼은 딸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디다. 아들 키우는 재미가 없어요.”
“저도 아들이 둘이라 편지를 읽으며 웃었습니다. 옆에서 영감이 ‘늙으면 마누라밖에 없으니 부인께 잘해 드리라’고 적으라고 합니다.”
얼핏 보면 지인이나 이웃끼리 주고받는 이야기 같지만 의사와 환자 사이에 오간 편지의 일부다.
관절 전문병원을 운영하는 이수찬(49) 힘찬병원 원장은 지난해 11월 4일, 자신의 생일에 두 아들에게서 받았던 섭섭했던 감정을 담은 편지를 충북 진천에 사는 김순녀(74) 할머니에게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김 할머니로부터 “시골서 농사지으며 아들들을 도시로 보냈는데 때론 살갑지 못해 섭섭한 적이 많다”는 내용의 답장을 받았다. 김 할머니는 2008년 12월 이 원장으로부터 무릎 인공관절수술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의사와 환자를 넘어 어느새 자식을 둔 부모로서 공감하는 사이가 됐다.
이 원장은 1998년부터 10년 넘게 자신이 치료한 환자들과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 지금까지 이 원장이 직접 쓴 편지는 대략 1만2000통이고 받은 답장만 해도 500쪽 분량의 책 7권 정도다. 꽃으로 정성스럽게 장식한 편지부터 맞춤법이 틀린 먼 시골 할아버지의 색 바랜 편지까지 모두 집무실 책장에 가지런히 보관돼 있다. 세월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이 편지가 이 원장에겐 보물 1호다.
이 원장은 “처음엔 학회나 휴가 등으로 진료를 쉬게 되면 환자들이 헛걸음칠까봐 엽서로 휴진 일정을 알려주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뜨거웠다”면서 “초기에는 한달에 5∼10통 썼지만 얼마가지 않아 20∼30통으로 불어났다”고 했다. 이 원장의 작은 배려가 환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 것이다. 지금은 한달에 100통 정도 쓴다는 것. “주로 수술, 진료가 끝난 저녁 시간에 씁니다. 틈틈이 환자를 직접 떠올리며 쓸 내용을 메모해 놓습니다.”
이 원장과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 가운데 70%가량은 자식을 도시로 떠나보낸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이고 25%는 도시의 독거노인, 나머지는 주부 등이다. 그러다 보니 사연도 많다. 글을 몰라 손녀 손자가 대신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이 원장의 편지를 벽에다 붙여놓고 매일 다시 읽거나 꽃바구니에 모으는 사람도 있다는 것.
“편지는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큰 의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또 어떤 내용으로 편지를 쓸 것인지 짬짬이 고민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요.”
이 원장은 주치의와 환자 사이의 편지라고 해서 병원이나 의학적인 내용을 쓰지 않는다. 주로 개인적인 신변잡기나 생활 얘기를 편지에 담는다. 그만큼 친근감을 갖기 위해서다. 이 원장은 “의사생활을 지속하는 한 환자들에게 편지를 계속 쓸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