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윤재석] 희생으로만 끝나선 안 된다

입력 2010-04-28 19:06


“천안함 침몰 사건이 위기대응 체계 확립과 안보의식 회복으로 승화되어야”

28일 낮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 ‘천안함 46용사 합동분향소’. 하늘도 국가애도기간임을 아는 지 사흘 연속 날씨마저 궂고 쌀쌀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시민들은 숙연한 모습으로 간간이 조문을 다녀갔다.

분향소에선 유해를 찾지 못한 산화자 6명을 포함한 46용사와 천안함 생존자 수색차 잠수했다 순직한 해군특수전여단(UDT) 소속 한주호 준위까지 모두 47위의 영정이 조문객을 맞았다. 누군가의 사랑하는 남편이자 듬직한 아빠였으며, 자랑스런 아들이자 사랑스런 연인이었고, 형제이자 친구였던 저들. 유가족의 무너진 가슴은 누가 보듬어줄 것이며 그들은 앞으로 또 어떻게 살아갈까.

분향소를 나서며 생각했다. ‘왜 이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가’고. 갈수록 북한의 소행으로 심증이 굳어져 가는 상황에서 일단은 원인이 확실히 규명될 때까지 지켜보기로 한다 해도, 명백한 사실은 우리 안보에 치명적 허점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천안함 침몰사건은 전형적인 비정규전의 결과였다. 따라서 군이 전면전에 대비하는 작전개념에서 벗어나 비정규전에도 적극 대비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제1 용의자이자 사실상의 주적(主敵)인 북한은 수년 전부터 잠수함 등에 의한 기습전을 위해 비대칭전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대남 작전계획을 바꿨다지 않은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방에서 수중무기에 의한 비접촉 폭발로 타격을 받은 것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우리 해군의 대잠(對潛) 작전 능력이 적의 공격을 유발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더욱이 서해는 남북한 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안보 각축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해역이다. 그렇다면 군의 작전 패러다임에 심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건 발생 후 군이 보여준 태도도 실망의 연속이었다. 초동대응부터 우왕좌왕, 좌충우돌이었다. 합참의장→국방장관→청와대로 이어져야 할 보고라인이 무시된 채 합참에서 청와대로 직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는 사이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사건 발생도 모른 채 50분 가까이 허비하고 말았다.

사건 발생시각을 처음 오후 9시45분이라고 했다가 세 차례 정정 끝에 오후 9시22분으로 겨우 결론을 내렸다. 합동참모본부 전술지휘통제체계(KNTDS)에 천안함의 위치신호가 오후 9시21분57초에 중단됐는데도 제대로 판단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이 태평성대가 아니라 엄연한 정전(停戰) 상태라는 점을 군이 몰랐을 리 없건만 총체적인 위기대응시스템은 처음부터 무너져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한국은 2년 후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받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곳곳에 구멍이 난 안보시스템으로 전작권을 차질없이 행사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청와대가 안보비상 대비시스템 정비를 구상 중이라지만 그 정도론 미흡하다. 안보 상황을 상시 체크하면서 비상 대비시스템을 가동하는 총체적 안보태세 재정립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을 통해 국민의 안보의식도 점검해야 한다. 추모와 애도 분위기 한켠에서 갖가지 악의적이고 무책임한 유언비어가 온-오프 라인을 통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심지어 자작극설에 해군과 희생 장병을 비하하는 발언조차 난무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안보에 대한 심각한 고민없이 안일한 일상을 살아온 게 아닌지 곰곰이 되짚어봐야 한다.

46용사의 유해는 오늘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영결식을 갖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정부 주요인사, 주한 외국대사와 외국 조문단, 군 장성과 유가족 등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최대의 해군장으로 거행되는 영결식에선 해군 함정의 승조원들이 뱃전에 도열해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대함경례까지 올려질 예정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전사자의 고귀한 희생과 유가족의 참담한 슬픔이 보상되지는 않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군의 안보체계가 확립되고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회복된다면, 그것이 가신 이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다.

윤재석 카피리더 jesus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