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은혜 (19) 1800t급 첫 잠수함에 ‘손원일함’ 명명

입력 2010-04-28 17:24


건강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그저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온몸을 깨끗하게 씻고 따뜻하게 해주며 늘 밝은 마음, 웃는 얼굴로 범사에 감사하며 살려고 한다. 그게 건강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요즘 나는 서너 달에 한번 정도 진해를 다녀온다. 예전처럼 일주일에 한번씩 오가기는 힘들다. 진해에 갈 때면 손원일 제독과 함께했던 해군사관학교 초창기 때가 많이 생각난다. 자식과도 같은 다락방의 해군 청년들을 볼 때면 늘 대견스럽다.

또 매주 금요일 서울 영락교회 새벽예배에 참석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6시쯤 해군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7시까지 교회로 간다. 그곳에서 한 시간 예배를 드린 뒤 이어지는 예비역 육·해·공군 대장들 모임에서 성경을 배운다. 대부분 65세부터 70대, 80대지만 나 혼자만 유일하게 90세를 훌쩍 넘겨 그 일원으로 성경을 공부한다. 예배가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붓글씨를 쓰고, 영어를 배운다.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가끔 ‘섬김의 집’이라는 보육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셋째 아들과 함께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로 된 노래를 함께 부르거나 쉬운 영어문장을 가르친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서쪽 언덕 상단에 위치한 장군 제2묘역은 대한민국 국군 창군의 주역을 모신 곳이다. 대부분 육군 장군의 묘이지만 유일하게 해군 제독의 묘가 하나 있는데, 바로 남편 손 제독의 묘이다. 묘 앞에는 돌판으로 된 성경책이 펼쳐져 있다. 요한복음 말씀이 새겨져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1997년 11월, 진해 군항지역에 해군들이 손 제독의 동상을 세웠다. 해군에서 자발적으로 동상을 세우자는 의견이 나오고 그것을 위해 각자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금을 내는 과정이 있었다고 들었다. 성금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해군이 마음을 보태 손 제독의 동상 제작에 참여해 주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또 2006년에는 국내 최대 규모인 214급(1800t급) 잠수함이 취역했는데, 그 1번함 이름이 ‘손원일함’이었다. 손 제독을 기리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지난해는 손 제독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식이 열렸다. 감사하게도 그때 해군에서는 나에게 공로패를 안겨주었다. 작은 그랜드피아노 모양의 공로패에선 내가 작곡한 해군가들이 흘러나온다.

손 제독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따라 청지기로서의 자기 사명을 감당했을 뿐이다. 다만 ‘초대’ 해군참모총장으로서 개척자의 길을 걷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희생하고 헌신했던 것이다. 이렇게 남아 있는 자들이 그를 기억해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손 제독이 ‘해군의 아버지’로 기억되는 덕분에 해군은 나에게도 ‘해군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참 부끄럽고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그 칭호를 받아들이려 한다. 왜냐하면 언제까지나 해군의 어머니이고 싶기 때문이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