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유기농 때문에… 아프리카가 야위어 간다

입력 2010-04-27 22:49


미셸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은 백악관에서 유기농 정원을 가꾸고, 유럽에서는 유기농 농작물로 만든 장바구니가 유행한다. 화학비료와 수입 농작물을 거부하는 ‘유기농 운동’이 환경을 보호하고 농촌을 지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선진국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아프리카 농민들은 더 가난해지고 있다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최신호에서 전했다.

◇아프리카에서 유기농의 역설=국제 곡물시장에서는 2008년 4월 쌀과 밀 가격이 사상 최고 가격으로 치솟으면서 세계 곳곳에서 식량 폭동이 일어났다. 이후 2년 만에 쌀 가격은 40%나 떨어졌고 밀도 절반 이하로 하락했다. 하지만 식량 폭동 이전 8억5000만명 수준이었던 세계 빈곤 인구는 올해 더 늘어 10억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FP는 그 원인이 선진국의 유기농 열풍이라고 지적한다.

1960∼70년대의 이른바 ‘녹색혁명’은 세계적인 식량 증산을 가져왔다. 화학비료와 농기계 개발, 종자 개량 등 과학기술을 농업에 적용했다. 녹색혁명은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으로 전파됐다.

환경운동가들은 90년대 이후 녹색혁명이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된 농작물을 생산한다고 비판하며 유기농 운동을 주창하기 시작했다. 유기농 운동은 화학비료와 농기계 사용을 자제하고, 수입 농산물보다는 지역 농산물 소비를 권했다.

문제는 세계 빈곤인구의 62%가 밀집해 있는 아프리카였다. FP는 “뒤늦게 녹색혁명의 혜택을 받기 시작한 아프리카는 사실 완벽한 유기농 환경에 머물러 있다”며 “바로 그 이유 로 아프리카 농민은 지금도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리카 농민은 대부분 농기계는커녕 비료조차 구입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 아프리카 농민의 평균 소득은 하루 1달러 수준이며, 3명 중 1명은 하루 섭취 영양분이 최소 기준치에 못 미치는 ‘영양실조’ 상태다.

◇식량 증산이 절실=FP는 아프리카 농업 문제에 대해 “재래식 농법에 대한 낭만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더 생산적인 농업을 위한 과학화와 투자”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환경운동가들이 화학비료 보급과 종자 개량 등에 반대하면서 아프리카 농촌에 대한 지원 규모는 오히려 줄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의 농촌 개발 지원금 규모는 90년대에 연간 5조 달러가 넘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 3조 달러대로 감소했다. 선진국들은 대신 식량 원조를 늘렸다. 미국의 아프리카 식량 원조 규모는 농업 개발 지원 규모의 20배에 이른다. 농사짓는 방법 대신 먹을거리만 주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 농업은 일부 서구 대기업의 농장을 제외하고는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인도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인도는 1960년대 미국 록펠러재단과 포드재단 등의 도움으로 녹색혁명의 혜택을 받았다. 비료공장을 건설하고 도로를 확장하면서 75년에 일찌감치 식량 자급자족에 성공했다.

FP는 유기농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FP는 “미국의 농경지가 100% 유기농으로 전환되면 유기농 비료 생산을 위해 지금보다 5배나 더 많은 가축과 농작물이 필요하다”며 “이들 가축과 농작물도 유기농법으로 기르려면 미국 국토의 대부분이 농장으로 바뀌어야 할 판”이라고 지적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