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권 사각지대의 여성 연예인

입력 2010-04-27 18:24

우리나라 여성 연예인을 상대로 한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가 처음으로 나왔다. 지난해 여배우 장자연씨 자살 사건을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 연예인 인권상황 파악과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보고서를 낸 것이다.

조사 결과 여성 연기자 10명 가운데 6명이 방송 관계자나 기획사 대표, 정·관계 인사에 대한 성접대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히는 등 아직도 연예계의 성인식이 상당히 왜곡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확인됐고, 직접적인 성관계를 요구받기도 했다. 스폰서를 해주겠다면서 “나는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고, 나는 너의 젊음을 사는 거야”라며 접근한 사례도 공개됐다. 성 노리개쯤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외에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을 요구받는 등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마저 침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응답자의 50% 정도가 성접대 제의를 거부한 뒤 실제로 캐스팅이나 광고출연에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답한 점이다. 여성들이 연예계에서 원만히 활동하기 위해서는 성접대에 응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엄존한다는 것이다. 이런 병폐가 지속되는 이유는 수도권에서만 1년에 무려 4만8000여명의 연예인 지망생이 쏟아져 나오고, 공식적인 오디션보다 비공식적인 미팅이 캐스팅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연예 기획사의 책임 또한 크다. 연예인들에 대한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영세한 기획사들이 너무 많다. 여성 연예인들의 인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기획사를 차릴 수 있는 사업자의 자격이나 자금 조건을 법률로 정할 필요가 있다는 인권위의 제안을 정부와 국회는 새겨들어야 한다. 기획사와의 불공정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계약 체결에 앞서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여성들은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지키겠다는 의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부당한 일을 요구받았을 때 단호하게 거부해야 연예계의 잘못된 관행이 시정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