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유병규] 출구전략 이후가 더 문제다

입력 2010-04-27 18:26


전후 최악의 한파를 겪었던 세계 경제에 따뜻한 봄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작년 말부터 세계 경제 전망치를 발표할 때마다 연방 올리기에 바쁘다. 최근에도 종전 3%대에서 4%대로 또다시 상승시켰다.

지표들을 보면 한국 경제 회복세는 세계 평균보다 훨씬 빠르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지난 2002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7.8%를 기록했다.

국내외 경제에 훈풍이 불면서 혹한기에 정신없이 마련했던 월동 대책들을 거둬들이는 일이 세간의 논란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금리를 언제 올리느냐에 관한 출구전략이 최대 관심사다. 한국을 비롯 경기 회복 속도가 빠른 아시아 국가들이 먼저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IMF 주장에 정부는 아연실색한다. 국내 연구기관이나 정책 부서 간에도 이를 둘러싸고 각자 서로 다른 의견을 내기 바쁘다. 국내 경제의 성패 여부는 오로지 금리 인상 시기 하나에 좌우되는 듯한 느낌이다.

세계 경제여건 크게 변할 것

출구전략에 대해서만 과도한 논쟁을 하는 것은 시간과 정책 생산 에너지의 낭비라 여겨진다. 물론 금리 인상 시기에 따라 경기 흐름이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출구 전략은 단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시점을 가늠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 큰 과제는 터널을 빠져나온 후 어디로 가느냐를 미리 생각해 둬야 한다는 점이다.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갑자기 광명의 세계로 나왔을 때 자칫하면 앞이 안보여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맬 수 있는 까닭이다. 터널 밖 세상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함께 한국 경제의 진로를 설정하고 그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출구전략 못지않게 중요하다.

일단 출구전략 시기와 방법은 정책 당국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결정하고 직간접적으로 일관되게 신호를 보내 시장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병행하여 출구전략 이후 변화된 국내외 여건 하에서 지속 성장을 위한 전략과 방안 마련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출구전략 이후 세계 경제 여건은 이전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우려된다. 우선 거시적으론 신3고 현상이 대두할 것이다. 출구전략으로 금리는 상승세로 반전될 게 확실하다. 국내외 경제가 호전되면서 이미 국제 유가와 철강재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국내 금리 상승에 의한 외국 자본 유입이나 미·중의 통화 전쟁 등으로 인한 위안화 절상은 원화 가치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제 비용 구조가 악화될 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새로운 샌드위치 상태에 빠져들 공산도 크다.

일본은 자동차와 전자 산업의 패인을 분석하고 막강한 연구개발력을 활용한 ‘패자의 역습’을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중국의 막대한 인구와 자본력은 한국의 경쟁력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하다. 세계 금융체제는 오바마의 금융개혁 정도 등에 따라 새롭게 변할 것이며, 경제 질서 역시 미·중의 G2를 중심으로 G20이 현안을 조율해가는 다자체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세계적 공급 과잉 상태인 철강, 조선, 반도체 등 국내 주력산업을 둘러싼 생존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 뻔하다.

한국의 적응력 하락 우려

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위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각국의 노력 도 한층 강화될 것이다. 주요국들의 재정이 악화되고, 중국을 비롯 아시아 국가들의 자산 버블이 팽창해 가는 것은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국내적으로 한반도 정세마저 극도의 불확실성 상태로 빠져들고 있어 더더욱 새로운 여건에 대한 한국 경제의 적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지금은 출구 전략 논의에만 파묻혀 있을 때가 아니다. 이후 변화된 세계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는 데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