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조선인 유골 66년만에 햇빛본다… 강제노역 중 사망 日 늪지대에 묻혀
입력 2010-04-27 23:41
경술국치 100년 기획 잊혀진 만행… 일본 戰犯기업을 추적한다
제2부 낯선 기업, 숨은 가해자
⑤ 공포의 노예 노동,북해도탄광기선
사흘 남았다. 늪지대에 묻혀 있는 조선인 유골들이 햇빛을 보기까지는.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최북단 소야군(宗谷郡)에 위치한 인구 2900여명의 사루후쓰(猿拂) 마을. 다음달 1일 이곳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됐다 강제노역 중 사망한 조선인 노무자의 유골을 발굴하는 작업이 벌어진다. 양심적인 일본 민간단체와 지역 주민들, 그리고 한국에서 건너온 교수와 젊은 대학생들이 함께 땀 흘려 곧 결실을 맺을 예정이다.
사루후쓰 아사지노(淺茅野) 비행장은 일본 육군의 발주를 받은 토목업체 단노구미(丹野組) 등이 1943년부터 급하게 공사를 시작한 군사시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 항공대는 소련군 남하를 견제한다는 목적으로 사루후쓰 늪지대 위에 나무판자 수만개를 깔아 길이 1.2㎞ 폭 60m 규모의 목조 활주로를 건설했다. 이 공사를 위해 한반도에서 끌려온 노무자가 2000명에 달했다.
1944년 이들 조선인이 머물던 감금형 숙소(다코베야·일명 문어방)에 장티푸스가 돌았다. 끔찍한 노예 노동에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이들은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최소 96명이 사망했다. 회사 측은 전쟁 중이라 연료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본 관습인 화장을 포기하고 공사장 주변 땅에 시신을 매장했다. 그리고 66년이 지났다.
지난 1월 말 국민일보 특별기획팀은 사루후쓰 촌장의 협조를 얻어 매장지에 들어갔다. 4륜 구동형 지프 차량을 타고 눈이 쌓인 도로를 힘겹게 헤치고 달렸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밭 한가운데 매장지에는 높이 1.8m의 목조 위령비가 서 있었다. ‘구일본육군 아사지노비행장 건설공사 조선인 희생자를 추모한다.’ 유골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주변 나무에는 붉은 끈이 달려 있었다. 눈이 녹는 5월이 오면 발굴 작업을 재개하기 위해서였다.
위령비를 세우는 데는 미즈구치 고이치(75) 할아버지 등 마을 주민의 힘이 컸다. 미즈구치 할아버지는 유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 아버지도 태평양전쟁 때 필리핀에서 홋카이도로 돌아오는 배에 타고 있다 폭격을 맞고 돌아가셨습니다. 유골을 찾지 못하는 한국인 유족들 마음을 조금은 이해합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시민단체 ‘강제연행·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포럼’이 유해 발굴 실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첫 발굴에 착수한 건 2006년 8월. 지금까지 두 차례, 30여구를 찾아냈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올해, 3차 발굴에 들어간다. 5월 1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발굴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안신원 교수팀이 담당한다. 전사자 유해 감정 분야의 1인자로 꼽히는 충북대 박선주 교수는 유골 감정을 맡는다. 두 대학 학생들과 함께 일본 홋카이도대 학생들도 발굴 작업에 동참한다. 이 같은 공동 발굴 작업은 한·일 민간 차원의 과거사 진상규명 및 화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도 하지 않고 있는 일을 양국 시민들이 묵묵히 진행하고 있다.
사르후츠(홋카이도)=글·사진 특별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