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하나님-오준수 변호사] “기도때 그분 말씀 체험한 선교사 부부 사연 나도 모르게 믿음의 눈물”

입력 2010-04-27 21:46


내가 태어난 곳은 완행버스가 하루에 한 번만 지나가는 첩첩산골이었다. 유교가정에서 4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산 너머 교회 새벽종은 우리 집 알람시계였다. 난 학창시절 ‘종교란’에 항상 ‘불교’라고 썼다. 결혼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난 후부터 까닭 모를 불안감과 두려움에 시달렸다. 알코올 의존도가 점점 커지자 장모님과 아내 등 가족들의 걱정이 커졌다.

“오 서방, 아무래도 하나님을 믿어야 할 것 같네.”

서울 신림동 왕성교회에 다니시던 장모님(임경애 권사)은 하루빨리 신앙을 가지라고 권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원도 강릉으로 가기 위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전도지(순복음소식지)를 건네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받지도 않고 받아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손바닥만한 한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평생 동안 선교활동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선교사 부부 이야기였다. 그 선교사 부부가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자 많은 시민이 주악을 울리면서 환영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 행사는 선교사 부부를 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 출신 비행사가 대서양을 횡단한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자신의 옛집에 돌아와서 짐을 푼 그들은 참으로 실망을 많이 했다. 일생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였는데 이게 무언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원망 섞인 기도를 드렸다. 이 때 선교사 부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너희는 참 고향에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 않았느냐, 너희가 진실로 참 고향에 돌아올 때는 내가 너희를 서서 영접하지!”

나는 그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과 아울러 천국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릴 때 들었던 교회 종소리가 은은하게 귓가를 울렸다. 내가 지금까지 두려워했던 것이 ‘죽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불안의 근본 원인이었음을 알았다. “만약 하나님께서 계시고 천국에서의 삶이 있다면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닌가?” 당장 그 다음 주일에 장모님의 인도로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교회에 등록했다.

이날부터 주일성수는 물론이고 모든 기도회와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마음에 평강이 넘치고 기쁨이 샘솟았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늘 느끼는 가운데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다. 나는 대학에서 천문기상학을 전공하고 공군 기상장교로 4년의 군 생활을 했다. 제대 후 결혼하고 독학으로 법학을 공부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군에서 군법무관 생활을 오래 하다가 하나님의 섭리로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법무법인 로고스에서 변호사 생활을 한 지 올해로 7년이 된다. 국방부에서 근무할 때에 침례신학대학원에서 3년간 신학을 공부한 후 목사안수를 받았다.

최근 법무법인 로고스에서 사목으로 임명을 받았다.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로고스 변호사와 직원들의 신앙생활과 공익활동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수년 전에는 아내(김영숙 목사)의 도움을 받아 교회를 개척했다. 이름을 ‘참소망교회’라고 했다.

요즘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법률고문단 서기, 기독교화해중재원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화해중재원의 사역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세상 법정으로 가지 않고 모두 이곳에서 각종 분쟁을 해결하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눈 코 뜰 새 없는 바쁜 생활 가운데도 늘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빠뜨리지 않는다. 주님은 언제나 참 소망과 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오준수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정리=윤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