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은혜 (18) 소아마비 청년 바로 걷게해준 믿음의 힘

입력 2010-04-27 17:30


한평생 하나님 품 안에서, 또 그분 뜻대로 살려고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더 나누지 못한 아쉬움, 더 전하지 못한 아쉬움, 더 기도하지 못한 아쉬움….

1980년대 후반, 낙도 선교를 후원하는 분들과 함께 목포에서 진도까지 8일간 선교를 다닌 적이 있다. 당시 미국 스웨덴 덴마크 등 5개국에서 온 예수전도단 청년들이 동참했다. 그 청년들의 열심을 보면서 큰 도전을 받았다. 그들은 끼니도 고작 빵과 라면 등으로 때우며 하루 24시간을 온통 복음 전파에 매달렸다.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연극도 하고 찬양도 하는 그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끄러웠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것도 젊은이들이 자비를 들여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의 오지를 찾아와 복음을 전하는데, 정작 내 나라 사람들은 한번도 이곳을 거들떠보지도 않는구나.” 물론 지금은 많은 분들이 낙도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복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었다. 그래서 씁쓸했다.

서로 언어는 달라도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니 선교현장은 감동의 장이었다. 나는 통역을 맡았다. 청년들과 함께하니 칠순의 내 나이도 잊은 채 전도에 몰입했다. 그때 죽황도라는 섬에서 만난 22세 소아마비 청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는 당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집회에 누군가의 등에 업혀 나왔는데, 그게 태어나서 첫 외출이라고 했다.

“마음속에 있는 모든 죄와 미운 감정을 털어놓고 예수님을 영접하세요.”

그러자 청년은 나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저는 부모님이 몹시 미워요. 저를 이때까지 가두어 놓기만 했어요.”

“그래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오늘날까지 키워주신 분은 부모님이세요. 그분들 이상으로 당신을 돌봐주고 사랑해주신 분이 어디 있어요?”

그의 두 손을 꼭 잡고 말을 건네자 갑자기 청년이 눈물을 흘렸다.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그를 붙잡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가 부축을 받으며 조금씩 한 발짝을 떼는 게 아닌가. 할렐루야!

순간 ‘이 청년을 돕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집회를 마친 뒤 그 청년을 고향 마산의 한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선 수술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비용이었다. “선생님, 꼭 수술을 해주세요. 지금은 수술비를 내는 게 힘들지만, 제가 꼭 마련해 드릴게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하지만 그 선생님은 한 노인네의 간절함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청년은 세 차례에 걸쳐 수술을 무사히 받았다. 이후 건강이 회복된 그에게 나는 기술을 배우도록 했다. 세월이 지나 그를 만나러 섬에 갔었다. 그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나를 꼭 끌어안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께 갚으세요”라고 답했다.

섬을 떠나오며 그와 한 가지 약속했다. 매일 밤 10시 같은 시간에 기도를 드리자고 했다. 나는 지금도 그 시간만 되면 무릎을 꿇고 그 청년(나에겐 지금도 그의 모습이 한결같은 청년이다)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통해 많은 것을 거저 받았다. 그렇다면 이제 거저 줘야 하지 않을까. 훗날, 아쉬움이 남기 전에 한번쯤 주변을 살펴보길 바란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