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김수현] 남은 가족에게 가장 절실한 건 아픔 함께해 줄 ‘이웃의 어깨’

입력 2010-04-26 22:04

해군 천안함 침몰 사고 직후 내려간 경기도 평택에서 20여일을 머물렀다. 각지에서 몰려온 승조원 가족들은 생사가 드러나지 않은 실종 장병들의 이름을 부르며 연일 울부짖었다. 동강난 함미를 건져 시신을 수습하던 지난 15일 애태우며 작업을 지켜보던 그들 곁에서 기자도 마음을 졸였다.

현장에서 자주 만나다 보니 가족들은 기자에게 다급한 부탁을 해 왔다. “해군에 의견을 전해 달라”거나 “신문을 가져다 달라”는 요청부터 평택으로 오는 차편을 묻거나 기차표를 대신 예약해 달라는 부탁까지 다양했다. 부대 안 임시 숙소에 머물며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그들의 부탁을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하루는 고 김종헌 상사의 매부로부터 천안함 사고 일지를 시간대별로 정리해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받았다. 국방부의 발표가 오락가락했고 김 상사가 당시 취침 중이었는지 근무 중이었는지 그런 사소한 것부터 알고 싶다는 이유였다. 부대 내에서는 인터넷을 하거나 신문을 받아볼 수도 없었다. 부대 옆 해군회관에 차려진 기자실에서 인터넷은 가능했지만 내용을 종이로 출력하려면 PC방이 있는 평택시내까지 나가야 했다. 가족들의 눈빛에 묻어나는 절박함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일지를 건네받은 가족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이거 구하려고 얼마나 힘들였는지 몰라요. 덕분에 우리 처남이 사고 전에 뭘 하고 있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고마워요.” 뭉클했다. 기자와 취재원 관계가 아픔을 공유하는 ‘이웃’으로 발전한 계기였다.

슬픈 소식을 전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고 김태석 상사의 시신이 발견된 지난 7일 아내 이수정씨는 기자의 전화를 받고서야 남편 소식을 처음 알았다. 사고 이후 여러 번의 통화로 가까워졌고 만나면 어깨를 주무르며 힘내라고 말해줄 정도로 친근해졌다. 그런 그에게 남편의 죽음을 알리는 기자의 마음은 참담했다.

김태석 상사의 첫째 딸 해나가 신종 인플루엔자 의심 증상으로 입원했을 때 김 상사의 노모가 신경성 불면증으로 응급실로 실려 갔을 때 그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던 순간만큼은 기자라기보다 이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김 상사의 큰누나 김효순씨는 “안정을 찾으면 국민일보에 믿음의 글을 기고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자는 김 상사 가족이 슬픔을 의연하게 극복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장례가 끝나면 희생자 가족들은 평택을 떠나 가정과 일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뒤늦게 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한 아버지는 최근 직장 동료에게 “아들을 잃으면 가족은 풍비박산난다”며 “장례가 끝나고 과연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누구도 잃어버린 가족을 대신할 수 없다. 희생자 가족들이 고통을 딛고 설 수 있도록 아픔을 공유하고 기꺼이 어깨를 빌려주는 이웃이 더욱 절실한 때다.

김수현 사회부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