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여학생회가 사라졌다… 나서는 후보 없어 총학에 속속 귀속

입력 2010-04-26 18:26


‘22대 여학생위원회가 세워지지 않음으로써 여학생위원회의 모든 권한이 총학생회로 귀속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26일 서울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회관 2층 여학생위원회 사무실 문 앞에 붙은 종이 한 장은 대학교 여학생 대표기구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외대 여학생위원회는 여학생 권익을 대변하는 총학생회 특별기구다. 주로 학내 성폭력·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 왔다.

이들은 올해 아무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임원으로 나서는 학생이 없었다. 여학생들은 이런 기구가 있는지 몰랐고, 필요하다고 보는 학생도 많지 않았다. 한국외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교가 성폭력 관련 학칙을 강화하고 전담 부서를 운영하면서 여학생위원회의 기능이 많이 약해졌다. 예전처럼 여성주의가 관심을 끄는 때도 아니라서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본보가 수도권의 13개 대학을 취재한 결과 9곳의 여학생 대표기구가 최근 몇 년 새 자취를 감춘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언제 마지막으로 활동했는지 기억하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들 여학생 대표기구는 총학생회에 흡수되거나 이름만 남기고 권한을 넘겨줬다.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총여학생회는 현재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회장 후보로 나서는 학생이 없어 지난해부터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홍익대 총여학생회도 같은 사정으로 유명무실해졌다.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는 아예 총여학생회를 폐지했다. 독자 운영이 어려울 정도로 참여율이 낮은 탓이었다. 두 학교는 대신 총학생회 안에 여성국을 신설해 여학생 복지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와 비교할 때 대학 내 여성 차별이 많이 사라졌고, 학교 당국이나 총학생회가 여학생 복지 시설이나 성폭력 예방대책을 잘 마련해 놓고 있기 때문에 여학생 기구의 역할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은 여성주의를 강조하는 여학생 기구에 거부감을 보였다.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2학년 이모(22·여)씨는 “예전에 총여학생회 홍보전단에서 ‘억압받고 있는 여성’이라는 문구를 보고 거부감이 들었다. 그동안 억압받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그 문구를 보니 오히려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올해 2년 만에 다시 꾸려진 한양대 총여학생회는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여학생 복지에 초점을 맞췄다. 회장 정영은씨는 “생리공결제 실시, 여학생 휴게실 및 화장실 안전 확보에 초점을 맞추는 등 여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여학생 복지를 개선해 양성 평등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강창욱 김수현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