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지분율 손질… 세계銀·개도국 ‘누이좋고 매부좋고’
입력 2010-04-26 18:25
“세계은행은 돈을 쥐게 됐고, 개도국은 발언권을 얻었다.”
세계은행이 25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발위원회 회의를 열어 승인한 선진국과 개도국 간 지분율 개편을 두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각국 언론이 한목소리로 내린 진단이다.
세계은행은 이번에 지분율 조정을 통해 51억 달러의 신규 자금을 수혈 받아 이를 바탕으로 굴릴 수 있는 가용 자본을 862억 달러로 늘릴 수 있게 됐다. 이번 자금 증가액의 절반 이상이 개도국에서 나왔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개편 배경에는 세계은행의 자금 고갈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운영자금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 경제위기에 빠진 각국을 돕기 위해 최근 2년 동안 1050억 달러의 자금을 쓴 때문이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추가적인 자금 유입이 없었다면 개도국에 대한 대출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도국은 지분율이 늘어나 투표권이 확대됐다. 이번 개도국의 투표권 확대는 무엇보다 중국의 달라진 위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중국의 투표권은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등 과거 유럽 강국을 제치고 세계 3위로 올라섰다.
중국의 셰쉬런(謝旭人) 재정부장은 “이번 조치는 개도국과 선진국 간 동등한 투표권을 향한 중요한 걸음”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는 앞으로 가야 할 과정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인도 브라질 한국 등 신흥국들도 수혜를 입었다.
일본은 여전히 2위에 머물렀지만, 이번 재조정 결과로 세계은행에서 발언권이 가장 큰 폭으로 축소됐다. 일본이 다마키 린타로(玉木林太郞) 재무성 부대신은 개도국의 지분 확대에 동의했지만, 이번 결정으로 1952년 회원 가입 이후 처음 지분이 줄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일본이 최대 피해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유럽의 약세도 뚜렷하다. 유럽은 그동안 세계은행 지분변화와 관련해 신흥 개도국에 지분을 넘겨줘야 하지만 미국은 지분을 유지한 채 자신들만 양보한다면서 반발해 왔다. 세계은행은 유럽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자매기구인 국제개발협회(IDA)에서의 유럽 기여도 강화를 반대급부로 제시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투표권에 변화가 없다.
개도국의 발언권이 높아졌지만 불만이 완전히 걷힌 건 아니다. 개도국 모임인 24개국(G24)은 개도국의 경제력 향상에 맞춰 투표권이 자동 올라가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국제국호단체 옥스팜은 “3%가량의 증가를 놓고 개도국에 많은 발언권을 줬다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