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교회가 비어 가고 있다] (상) 유서깊은 교회가 귀신체험관으로 추락
입력 2010-04-26 20:48
올해는 존 낙스의 종교개혁이 있은 지 450주년이 되는 해다.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장 칼뱅이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를 나온 뒤 귀국, 당시 부패한 가톨릭에 맞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를 세운 인물이다. 존 낙스의 종교개혁 450주년을 맞아 장로교의 산실인 에든버러를 찾았다.
영국 교회가 비어가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한국 장로교회의 모태가 된 영국 장로교회가 술집과 유령 체험관, 티켓 판매점, 이벤트 장소 등으로 바뀌고 있다. 장로교회뿐만이 아니다. 감리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에는 젊은이는 찾아보기 힘들고 노인들만 10여명씩 모여 주일 예배당을 지키고 있다.
에든버러 성문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 장로교회. 고풍스럽고 위풍당당한 교회는 1979년 문을 닫고 의류판매점과 티켓 판매소로 전락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예배당 의자 대신 의류 진열을 알리는 선전판과 사무용 책상들이 가득했다.
이곳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교회는 유령 체험관으로 변했다. 교회 앞에는 검은 복장을 한 남자가 관광객들에게 귀신 체험관에 대해 설명했다. 관광객들은 교회건물 안에서 1시간 동안 벌어지는 갖가지 귀신 체험을 하기 위해 표를 사서 들어갔다. 에든버러 시내의 교회 대부분이 이처럼 바뀌었다.
존 낙스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450년 만에 영국 교회는 무너져가고 있다. 에든버러 시내 중심가인 하이스트리트 42∼45번지에 있는 낙스의 생가는 무너져가는 영국 교회를 홀로 힘겹게 버티고 있는 듯했다. 생가의 한쪽은 스토리텔링 교육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3층 건물 입구 위에 ‘LVFE GOD ABVFE AL, AND YI NYCHTBOVR AS YI SELF(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쓴 문구가 눈에 띄었다.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큰 계명인가’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말한 성경 구절(마 22: 37∼39)을 스코틀랜드 말로 새겨 놓았다. 생가는 가끔 찾아오는 손님만 맞을 뿐이었다.
영국 교회가 무너져가는 현장은 주일 예배 장면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지난 18일 런던 중심가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채플. 이곳은 2차대전 당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가 시무하며 설교를 통해 영국을 일깨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한 곳으로 유명하다. 영국 성공회를 대표하는 교회가 ‘웨스트민스터 애비(Abbey)’라면 이곳은 영국장로교회를 대표하는 곳이다. 11시 예배에 200여명의 교인이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시작되자 찬양을 인도하는 기타리스트와 드럼 연주자, 건반 연주자, 싱어 등 5명이 단상에서 40여분간 찬양을 인도했다. 한국교회에서 볼 수 있는 성가대도 없고, 대표기도도 없다. 찬양이 끝나자 그레그 하슬람 담임목사의 아들 앤드루 하슬람 목사가 나와 설교했다. 그리고 축도 없이 예배는 끝났다.
같은 날 에든버러시 중심가에 있는 성 앤드루스 앤드 조지스 교회. 1766년 설립된 유서 깊은 교회는 노인 8명이 앉아 주일 11시 예배를 드렸다. 이 교회 입구에는 4월의 뉴스레터와 교회역사, 사역 프로그램 등을 소개하는 다양한 소책자들이 비치되어 있다. 하지만 교회는 그저 조용하고 무거운 침묵 속에서 목사의 설교만 성전을 울렸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노인 8명과 사랑의교회 사역자 4명 등 12명이 예배를 드렸다고 전했다. 오 목사는 “목회자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면서 “무너져가는 영국 교회의 현실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웨스트민스터 채플 하슬람 담임목사는 “우리 교회는 영국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라면서 “대부분의 영국 교회는 10∼20명의 노인 신자들이 예배를 드린다”고 말했다. 웨일스에 있는 한 목회자는 200여개 교회가 올해 안에 문을 닫을지 모른다고 암울한 심경을 전했다.
런던·에든버러=글·사진 이승한 기자 s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