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폭두목 뺨치고 남을 당진군수
입력 2010-04-26 17:52
뒷골목 세계를 소재로 한 영화 시리즈를 보는 것 같다. 얼마 전엔 경기 여주군수가 해당 지역구 의원에게 돈다발을 건네려다 현행범으로 체포되더니, 이번엔 충남 당진군수가 위조여권으로 몰래 출국하려다 적발되자 잠적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도덕 불감증 차원을 넘어선 기초단체장들의 잇따른 탈법·불법 행위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민종기 당진군수는 지난 24일 위조여권으로, 또 한 번은 본인 여권으로 두 차례 출국을 시도했다. 100억원대 관급공사 7건을 한 건설사에 몰아주고 업체 대표로부터 3억원 상당의 별장 등을 뇌물로 받은 혐의가 감사원 감사에 적발돼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자 중국으로 도피할 마음을 먹은 듯하다.
민 군수는 무인 자동출입국 심사대를 통해 출국하기 위해 다른 사람 여권에 자기 사진을 붙여 관련 정보를 등록하러 사무실을 찾았지만 출입국관리 당국의 예리한 눈을 피하지 못했다. 민 군수는 “여권이 이상하다”는 담당 여직원의 지적에 놀라 가짜 여권을 놓고 줄행랑쳤다. 한 시간 뒤 본인 여권을 갖고 일반 출입국심사대로 출국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민 군수는 “출국 금지돼 출국할 수 없다”는 관계자의 말에 종적을 감췄다. 사정 당국의 기민한 대처가 민 군수의 해외도피를 막았다.
감사원에 따르면 그는 조폭 두목에 가깝다.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처제 등에게 관리를 맡겼고, 3억원짜리 아파트를 부하 여직원에게 사주었다. 조폭 영화에나 나옴직한 범죄조직 두목의 행태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이런 자가 지난 6년간 당진군을 이끌었으니 군정(郡政)이 정상이었을 리 없다.
열린우리당 후보로 2004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민 군수는 올 1월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오래 전부터 비리가 있었고 철새 전력까지 있는 민 군수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공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뒤늦게 공천을 취소하고,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지만 그것으로 한나라당의 과오가 면책되는 건 아니다. 군수를 잘못 뽑은 유권자의 책임 또한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