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은혜 (17) 기독 장교 교류의 장 ‘원일다락방’ 건립

입력 2010-04-26 17:36


“다락방이 설립된 지 10년 되던 해인 1980년, 홍은혜 권사가 다락방 형제들의 신앙생활에 큰 감동을 받아 자신의 사재를 헌납하므로 현 다락방 부지를 매입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조용기 목사)의 건축비 지원, 김성은 장로의 토지 헌납, 해군 교회들과 기독 장교들의 헌금으로 본 건물이 건축되었으며 그리고 ‘신앙을 통한 기독 장교들의 지도자적 자질함양’과 고 손원일 제독의 염원이었던 ‘신사 해군 상을 구현한다’는 뜻에서 ‘원일다락방’이라 명명하고, 이 건물이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해군 복음화를 이루는 데 더욱 요긴하게 쓰여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새긴다.”

2003년 5월 5일 원일다락방 형제자매들이 진해의 원일다락방 입구 현판에 남긴 문구다. 생각해 보니 다락방이라는 말 자체가 기적의 단어이다. 유월절 전날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던 곳, 그리고 오순절 날 기도하던 주의 백성들이 성령을 받던 곳이 다락방이 아니던가. 마가의 다락방 같은 기적이 이곳 원일다락방에도 넘쳐나기를….

원일다락방에 가면 나는 1층 나의 방에 머무른다. 처음 다락방이 만들어질 때 1층에 예배실, 식당, 친교실과 함께 감사하게도 내 방을 따로 꾸며준 것이다. 형제들은 2층 방에 머무르는데, 현재 2∼3인실 10개, 5인실 1개의 방이 있다. 지하에 관리 겸 주방을 섬기는 집사님의 거처가 있고, 3층에는 기도실, 다락방 입구에는 탁구대가 설치되어 있다. 다락방의 하루는 매일 새벽 5시 새벽기도로 시작된다. 개인기도뿐 아니라 민족과 군의 복음화를 위해 중보하고 개별적인 성경공부를 통해 서로의 신앙적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엔 1년에 여섯 번 정도 원일다락방을 찾는다. 이제는 손주뻘 되는 다락방 청년들을 볼 때면 새삼스레 90을 넘긴 내 나이를 실감하면서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찬양을 부를 때면 내 나이를 잊게 된다. 나는 그들에게 “다락방 생활이 어떠냐?”고 종종 묻는다.

“저는 다락방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섬김과 나눔을 배웠고, 배운 말씀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함상근무 시절, 주말 출동이 있을 때 교회를 가지 못하는데, 다락방에서의 예배인도 경험을 살려 함상예배를 1년8개월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다락방 형제들과의 생활을 통해 주님께 초점을 맞추며 살아갈 수 있었고, 결국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또 향후 해군에서 장기 근무를 하며 주님 전하는 것을 삶의 최대 목표로 설정하였습니다.”

“저의 첫 부임지는 인천이었습니다. 주기적으로 1년에 두 차례 정도 진해로 함정을 수리하러 내려왔습니다. 그럴 때면 원일다락방에서 잠을 청하곤 했는데, 마치 엄마의 품처럼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인천에도 월세방을 하나 구해 ‘인천다락방’이라 이름 짓고 입방 예배도 드렸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들인가. 다락방은 그야말로 기적의 공동체다.

지난해 12월 19일 ‘다락방 작은 음악회 및 홈커밍데이’에 참석했다. 여느 때처럼 꽃이나 엽서, 그림 등 내가 일일이 만든 선물을 한아름 안고 달려갔다. 다락방 청년들은 참 맑고 깨끗하다. 앞으로도 그들이 작은 예수가 되어 해군 내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