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차범근 수원 감독 “팬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성적 나쁜 것은 감독 책임”

입력 2010-04-25 21:54

차범근(57) 수원 삼성 감독이 지도자 인생 두 번째 위기에 빠졌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0대 5 패배를 당한 뒤 대회기간 중 전격 경질됐던 차 감독이 이번엔 소속 팀 수원의 거듭되는 부진에 고심하고 있다.

차 감독은 지난 24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강원FC와의 K리그 경기에서 1대 2로 패했다. 거의 한 달 전인 3월 28일 경남FC에 1대 2로 진 이후 정규리그 5연패다. 수원의 팀 최다 연속 패배 기록이다. 차 감독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차 감독은 강원전 이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항상 열광적으로 응원해주시는 팬들께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우리의 성적이 나쁜 것은 전적으로 감독 책임이며, 팀이 그 책임을 묻는다면 퇴진할 용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장에 있던 수원구단 관계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차 감독의 폭탄 발언이었다.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차 감독이 팀 성적에 대해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다만 ‘팀이 그 책임을 묻는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무조건 사퇴하겠다는 입장과는 다소 거리를 뒀다.

이날 경기가 수원 팬들에게 준 충격은 컸다. 차 감독이 갑작스럽게 사퇴 의사를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강원은 이날 수원전 이전까지 K리그 최하위인 15위를 달리고 있었다. 요새 수원의 상태가 아무리 좋지 않다 해도 K리그 명문 구단 수원의 꼴찌팀 상대 패배는 수원 팬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전반전을 0-0으로 끝낸 수원-강원전 하프타임 때 관중석에서는 ‘차범근 퇴진’을 요구하는 문구가 등장하기도 했다.

차 감독 사퇴 발언에 깜짝 놀란 수원구단 측은 진화에 나섰다. 안기헌 수원 단장은 “지금의 부진은 감독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다. 차 감독이 잘해보자는 취지에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아직 시즌 초반인데 변화를 주는 것은 맞지 않다. 차 감독에게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도록 팀을 추스르는 데 힘써 달라고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분수령은 이번 주말 수원-전남전(5월 1일)이다. 일단 수원구단 측에서 차 감독 사퇴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을 밝힌 만큼 당장 차 감독이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수원이 전남전까지 패해 6연패에 빠질 경우 수원 팬들의 실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수원의 일부 서포터스들은 차 감독 사퇴 운동을 벌이겠다는 강경 입장이다. 차 감독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린 1주일이 시작된다.

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