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 이유 금리묶었던 한국 독자적 출구전략 압박 커져

입력 2010-04-25 21:44


G20 재무장관회의 내용·과제

이번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출구전략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변화이다. 재무장관들은 세계경제 회복세가 예상보다 빠르다고 진단하며 향후 출구전략이 국가별 상황에 맞춰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공식화했다.

일부에서는 은행세 도입 현안은 물론 화석에너지 보조금 축소 등 이미 합의된 내용의 이행 속도가 눈에 띄게 굼떠졌다며 G20 협의체에 이상기류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진단도 나온다. 오는 6월과 11월 캐나다 토론토와 서울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의 합의 수준이 기대치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출구전략 국제공조 희석=지난해 9월 미국 피츠버그 정상회의를 마치며 G20 정상들은 성명서에서 “우리는 성급한 경기부양책 철회를 피하고, 출구전략을 마련해 적절한 시기에 조화와 협력으로 예외적인 정책지원을 거둬들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재무장관회의 때만 해도 유지됐던 이 ‘조화와 협력’ 원칙은 이번 워싱턴회의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합의문에도 국제공조보다는 개별국의 특수성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이번 워싱턴회의 성명서에는 “그동안 취했던 거시 및 금융 분야의 예외적 지원 조치로부터 자국 상황에 맞는 신뢰할 만한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라는 문구가 삽입됐다.

SC제일은행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대해 “단서가 붙긴 했지만 사실상 출구전략이 나라별로 진행될 수밖에 없음을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가 터졌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확장적 재정·금융정책의 실행에는 각국이 뜻을 모을 수 있었지만 경제 정상화 속도가 다른 만큼 긴축으로의 전환은 나라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셈이다.

이에 따라 출구전략 시기상조론을 주장하며 한국은행에 금리 동결을 압박해온 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의 입장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 한국과장도 “한국의 견실한 성장세로 볼 때 금리 인상을 단행해도 된다”고 잇달아 지적한 바 있다.

한 민간 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공식화하진 않았지만 금리 인상 시기상조론 배경에는 G20과의 국제공조가 자리잡고 있었다”며 “이런 맥락에서 이번 합의는 향후 경제운용과 통화정책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한국시간) 워싱턴 인근 식당에서 가진 특파원들과의 만찬에서 “이번 경제위기도 전 세계가 공조해 저금리로 유동성 공급을 했다”면서 “저금리로 빚어진 과잉유동성 때문에 이런 사태가 생겼는데 다시 한번 저금리로 이 사태를 수습하고 있어 위기를 다시 잉태하고 가는 거다”고 말했다.

윤 장관의 이날 발언은 한국 또한 적절한 시점에 금리 인상을 통해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단행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G20 대표성 꺼리는 참가국, 왜?=그동안 적극적인 공조체제를 발휘했던 G20이 돌연 소극성을 드러내고 있는 원인은 개별국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은행세 도입 등 회복 국면의 글로벌 금융시장 개편 논의에 있어 국익과 국제공조가 상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은행세는 은행의 무분별한 확장을 억제하고,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자산이나 부채의 일정비율을 모아두었다가 위기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는 금융위기 단초를 제공한 거대 금융회사의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문제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입장에선 성장 단계인 자국 금융산업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것을 우려했다.

이 밖에 G20을 통한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 재편에 대한 기존 기득세력국의 거부감도 금융위기 이후 G20 평가절하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굵직한 합의를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IMF 쿼터 조정을 당초 예정보다 2개월 빠른 오는 11월 서울 정상회의에서 마무리 짓기로 하는 등 성과도 있었다. 선진국이 선점하고 있는 국제금융기구의 주도권을 각국의 경제력에 맞게 재배분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정동권 배병우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