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은혜 (16) 손 제독 “예수 잘 믿다 오세요” 유언

입력 2010-04-25 17:42


1980년 1월 남편 손원일 제독의 건강 상태가 더 악화됐다. 남편 곁을 지키면서 나는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불렀다. 그런데 남편이 누군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분명 방 안에는 우리 둘뿐인데 말이다.

“누구와 그렇게 이야기를 하신 거예요?” 그러자 남편은 “예수님과 이야기했어요”라고 활짝 웃었다. 그동안 한번도 예수님을 꿈속에서라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문득 평생 크리스천으로서 주님의 일을 성실히 수행한 그의 삶을 예수님께서 칭찬해주시는 것 같아 감사했다.

그는 이어 “아버지(손정도 목사님)께서 많은 사람과 함께 나를 환영해주고 계셔”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와 헤어짐을 앞둔 나는 눈물을 흘렸다. “저에게 해줄 말은 없어요?”라고 묻자, 남편은 “예수님 잘 믿다가 오세요”라고 대답했다. 그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80년 2월 15일 남편은 편히 눈을 감았다. 2월 19일 손원일 제독 장례식은 해군 성가대의 찬양과 그가 작사한 ‘바다로 가자’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조촐하고 엄숙하게 진행됐다.

손 제독은 부에 휩싸이지도 않았고 권세에도 휘말리지 않았다. 명성을 탐하여 비굴하지도 않았고 늘 겸손했다.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했다.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바다 사랑을 외친 그는 진정으로 명예로운 이름을 남기고 떠났다. 손 제독이 마지막으로 부탁한 말은 “나라를 지키려고 싸우다 죽어간 장병들을 잊어선 안 된다. 다시는 내 조국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켜 달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먼저 하늘나라로 갔으나 나는 해군이 원하면 어디든 달려갔다. 특히 초임 장교들의 다락방 모임을 자주 찾았다.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월급을 모아 10평가량 되는 다락방에 세를 들었다. 왜 편리한 BOQ(미혼장교숙소)를 마다하고 좁은 다락방에서 생활할까. 답은 간단했다. 해군사관학교를 다닐 때는 신앙생활을 잘했으나 졸업하고 배를 타니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고 속도 울렁이고 스트레스가 쌓였단다. 휴식 시간이면 자연스레 술을 마시는 등 신앙을 멀리하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믿음을 점검해 보자며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단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인원은 늘었고, 그러다보니 더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나는 감동을 받았다. 손 제독의 신사해군 정신을 이어갈 이들을 돕고 싶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린 뒤 손 제독의 이름을 딴 ‘원일다락방’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인도하셨을까? 건물을 지으려면 돈이 필요했다. 지금은 원로가 되신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을 찾아갔다. 이미 조 목사님은 해군사관학교교회를 위해 헌금을 해주신 상태였다. 그런데 또다시 목사님을 찾아갔으니 얼마나 난감하셨을까. 그런데 조 목사님은 해군사관학교교회 헌당예배를 드리는 날, “하나님께서 다락방을 지어주라고 하십니다. 저희 교회가 지어드리겠습니다”라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2억5000만원을 헌금해주셨다.

과거 손 제독과 나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한 보육원 원장을 통해 포도밭을 매입했다. 그리고 당시 김성은 국방장관이 후원해준 땅을 사 그 돈으로 다락방 내부의 살림살이를 장만했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