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善의 기준, 옳음의 기준
입력 2010-04-25 17:46
로마서 12장 2절
독일 철학자 헤겔(1770∼1831)의 정반합이란 변증법 논리가 있습니다. 이는 정(正)이라는 하나의 주장과 그에 반(反)하는 주장 가운데 더 좋은 합(合)이라는 것을 찾아내 통합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돼 사회가 발전하고, 과학과 문명이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헤겔의 변증법 논리를 기독교에 적용할 수 있을지 질문을 해봅니다. 무엇이 정이 되고 무엇이 반이 되고 어떻게 합이 나올 수 있을까요. 옳은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반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어느 정도의 반하는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합이 탄생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신학 발전을 위해 변증법 논리가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신학과 신앙의 붕괴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주장은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주장이 선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화에 따라 옳은 것의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종족 종교 법률제도에 따라 옳음의 기준이 다르고 선의 기준도 다릅니다. 좁게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옳음의 기준이 다릅니다. 다름의 주장들이 인간에 의해 절대화돼 분쟁과 다툼이 끝이 없이 평행선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물론 서로 다름으로 또 하나의 다른 합의 기준을 찾아보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사람의 기준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불완전함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지식과 상식, 법률로 죄를 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생각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다가 징계를 받았습니다. 사울 왕은 자기의 상식으로 선의 기준을 만들었다가 망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빌라도는 자기들의 짧은 종교적 지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사울이던 시절 자신의 지식으로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 입장에서 선의 기준과 옳음의 기준을 말하면 안 됩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반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3장 8∼9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그러면 선의 기준을 어디서 찾고 옳음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찾아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선과 옳음의 기준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기준을 성경을 통해 주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성경 적용에 있어 정반합의 변증법 논리에 흔들리면 안 됩니다. 성경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 앞에 모두 잠잠해야 하고 그 기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름답고 복된 삶의 통로입니다.
신만섭 목사(서암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