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적절한 용기

입력 2010-04-25 19:25


전 남편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를 제치고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캐서린 비글로 감독의 ‘허트 로커’는 결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이라크전에 투입된 미군 폭발물 제거반(EOD)을 통해 이라크전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정공법으로 그려내어 전쟁의 상처와 인간의 용기에 대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주인공 윌리엄(제레미 레러)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인으로서 폭탄 제거의 긴장과 공포를 생동감 있게 전한다. 전쟁의 비극과 함께 결정적일 때 적절한 용기를 행동으로 옮겨, 보는 이에게 미화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뭉클함을 준 영화였다. 목숨을 담보로 한 용기가 적절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때 밀실정치의 대명사로 불리던 요정 대원각이 길상사로 바뀌는 결단을 해준 자야(子夜) 김영한의 용기, 한 번도 주지 되기를 허락지 않던 법정 스님의 수용, 여기에 길상사를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 거기에 화답하듯 지금도 길상사 마당에는 성모마리아를 닮은 관음상이 자리하고 있다. 적절한 용기는 이기심과 배타주의를 넘어 이해와 포용의 산물이 된다.

영화든, 현실이든 두려움과 의심을 걷고 용기를 보여줄 때 감동을 받는다. 팔 없이 그림 그리는 화가, 다리가 없어도 달리는 마라토너, 병마와 싸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웃, 자기 자식을 죽인 사람을 결국 사랑으로 용서하고 감싸준 사람 등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감동을 받는다.

그들은 두려움과 의심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적절한 용기와 바꾼 영웅들이다. 이데올로기와 죽음을 상대로 담담하고 정직하게 싸우는 평범한 영웅들도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한다. 극우니 극좌니, 강남보수니 강북진보니 하는 말보다는 그저 삶의 전장 한가운데서 불평도 미화도 하지 않고 열심히 살면서 적절한 용기를 보여줄 때 큰소리로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보다 경이와 존귀를 더 느끼는 경우가 많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 덕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스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오염된 세상이 이런 영웅들 덕분에 자정적(自淨的)으로 조화롭게 가꾸어지고 있나보다.

남녀 간 사랑에도 적절한 용기가 그 사랑을 성숙하게 꽃피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적·공간적 배려를 할 줄 아는 적당한 용기가 있어야 그 사랑이 온전히 뿌리 내릴 수 있다.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 캠퍼스 커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를, 또는 그녀를 가끔씩 살짝 놓아주는 용기가 너를 살리고 둘의 사랑을 살린다고 말이다.

음식을 조리할 때 삼중 바닥의 두꺼운 냄비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지만 라면을 끓일 때는 얇은 양은냄비에 끓여야 제 맛이 난다는데 이 또한 적절한 용기(?)의 선택이지 않은가.

용기의 발휘는 균형감 있는 적절함이 동반되어야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사실을 오늘도 시행착오를 통해 깨닫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적절한 용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김애옥(동아방송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