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엄포 넘어 판깨기… 12년 만에 ‘관광’ 사실상 끝
입력 2010-04-23 22:02
북한이 금강산관광을 사실상의 폐쇄 국면으로 끌고 가고 있다. 잇따른 대남 압박 조치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결국 몰수와 동결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낸 것이다.
◇초강수 배경=북한은 2월 8일 개성에서 열린 금강산 실무접촉이 결렬되자 지난달 4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4월까지 금강산관광이 재개되지 않을 경우 남측 부동산을 동결하고 계약을 파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25일부터 31일까지 강행한 남측 부동산에 대한 조사와 지난 13일 정부와 한국관광공사 소유 면회소, 온천장 등 5곳에 대한 동결 조치도 이번 조치의 예고편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북측 조치가 예상보다 빨리, 수위가 다소 높아진 측면도 있다.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불꽃놀이’ 발언이 북한을 세게 자극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은 태양절(4월 15일) 전야에 축포야회(불꽃놀이)를 하자 “북한이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고 비판했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23일 “이번 축포야회는 고 김일성 주석과 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후계자 김정은과 연관돼 있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가문과 관련된 부분이라 북측이 타협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응책 없는 정부=이번 조치로 금강산관광은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북측의 추가 조치도 민간 부동산에 대한 몰수 조치와 현대아산과의 50년 사업 계약 파기밖에 남지 않았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남측의 대응 여부에 따라서는 북한이 민간 부동산의 몰수와 사업권 파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북한이 몰수한 면회소와 온천장, 면세점 등을 활용해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관광을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당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을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남북 간에는 ‘투자 보장에 관한 합의서’도 체결돼 있지만, 당사자 간 협의를 통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해법으로 보기 어렵다. 합의 위반과 계약 파기를 이유로 국제 중재기구로 끌고 가는 방안을 검토할 수도 있지만, 북한은 ‘국제 중재에 대한 뉴욕협약’ 미가입국이다.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다.
◇남북관계 파국?=북한이 지난해 5월 핵실험 이후 취해온 대남 평화공세 기조는 폐기됐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의 청와대 방문 이후 삼갔던 ‘이명박 역도(逆徒)’라는 표현도 지난 17일부터 다시 쓰고 있다. 전문가들도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최후의 방책이 없는 한 경색된 남북관계를 회생시킬 방법이 없다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천안함 침몰 원인은 남북관계에 또 다른 변수가 될 전망이다. 침몰사고에 북한 군부가 개입된 정황이 드러날 경우 남측은 대북 제재에 총력전을 가할 수밖에 없고, 북측 역시 전면적인 대남 공세로 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6자회담의 재개도 우회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