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같은 소·돼지 묻으라니… 억장이 무너진다”

입력 2010-04-24 00:48

“자식 같은 소, 돼지를 묻는 심정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충북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에서 한우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하모(60)씨는 23일 축사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2000년 구제역 파문 당시 자신이 기르던 한우를 전부 땅에 묻었던 ‘악몽’이 떠올라서다.

당시 하씨는 기르던 소가 구제역 판정을 받아 눈물을 머금고 살(殺)처분해야 했다. 지금은 농장이 구제역이 발생한 신니면 용원리에서 3㎞ 정도 떨어져 있어 살처분은 간신히 면한 상태다. 하지만 구제역 확산 분위기를 볼 때 언제 살처분 지시가 떨어질지 몰라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하씨는 “10년간 온갖 노력을 기울여 일궈놓은 농장이 또다시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며 “보상 대책도 없이 무조건 살처분 지시만 내리는 게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는 살처분 가축에 대해 시세의 50%를 우선 지급하고 추후 가축 종류와 연령, 수태 여부 등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 지역 축산 농민들은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다. 왕영철 용원리 이장은 “자식처럼 기르던 가축이라 안 그래도 마음이 아픈데 보상액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살처분을 해야 하니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다두사육농가들로 구성된 충주 구제역 비상대책위원회 주민 25명은 신니면사무소를 찾아 정부가 현실적인 보상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살처분에 응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한 회원은 “내가 키우는 소는 멀쩡한데 구제역 발생지역 반경 3㎞ 안쪽이라고 해서 소, 돼지를 살처분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충주시와 방역당국은 이날 오전 구제역 발생 돼지농장 주변 가축 2900여 마리에 대한 살처분과 매몰처리에 착수했다.

전국의 동물원에도 비상이 걸렸다. 과천 서울대공원은 구제역 경계경보가 내려진 지난 10일부터 동물 먹이주기 행사를 취소하고 관람객들로부터 동물을 격리했다. 동물사 출입구마다 소독 카펫을 설치하고, 경비 초소에서 출입차량 소독도 강화하고 있다. 서울대공원에는 현재 각종 사슴류, 히말라야 산양 등 우제류(偶蹄類·짝발굽동물) 60종 570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모의원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은 “동물원에서는 축산농가처럼 동물 이동이 잦지 않아 구제역 발생 가능성이 낮지만, 관람객을 통한 간접전염 우려가 있어 차단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며 “동물사 철망 안팎에 2m 간격으로 차단 띠를 둘러 관람객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 김포시에서 또다시 구제역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3일 오후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의 돼지 농가에서 일부 돼지가 사료를 잘 먹지 않고 열이 나면서 콧등에 궤양이 생기는 증세를 보여 구제역이 의심된다고 신고했다”고 밝혔다. 이 농가는 바이러스 전파력이 강한 돼지 3200마리를 기르고 있어 방역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24일 오전에 나오는 정밀검사 결과 구제역으로 판명될 경우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500m에서 3㎞로 넓히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백민정 김재중 기자, 충주=이종구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