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록 장편 ‘달의 제국’… 경술국치 누구 책임인가? 진실 외면하는 역사에 일침
입력 2010-04-23 17:42
“8월 29일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병합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왜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부끄럽다고 속죄양을 내세워 놓고 진실을 외면하는 역사, 변명하는 역사에 일침을 가하고 싶었습니다.”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 등 역사소설을 발표해온 작가 김종록(47)이 장편 ‘달의 제국’(글로세움)을 펴냈다. 현대의 강남과 구한말, 일제 시대를 오가며 닦아도 닦아도 부끄러운 역사와 그 속에 휩쓸린 개인이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증권사 직원 손대주는 강남 갑부 한창운의 소개로 명사들의 사교클럽인 ‘청담사랑방’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우당이란 인물을 만난다. 다방면에 해박한 우당은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완용과 그의 스승 박세익에 얽힌 구한말 당시의 비화를 들려준다. 박세익은 우당의 증조부였다.
우당은 국권 상실 과정을 언급하며 “추세적 인물 이완용을 동정할 뿐 욕하지 않는다.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국부가 유출되는 걸 방관하는 관료나 CEO, 기술자들도 많다. 평범한 소시민들 가운데도 기회가 닿으면 조국과 민족을 배반할 사람들이 부지기수다”라고 덧붙인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직후 집으로 찾아온 스승에게 이완용은 “개인의 힘으로 제국주의 국가 체제를 당해낼 수 없다”고 고백한다. 작가가 한창운의 입을 통해 국권 상실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대목이다.
“조선이 망했던 건 일본 제국주의에 1차 책임이 있지만 침략국 일본과 매국노 이완용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우리 잘못이 너무 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고종이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새벽 2시에 ‘도둑 대관식’을 치르고 제국을 8년 만에 일본에 갖다 바친 불편한 사실들도 들춰낸다.
소설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머니게임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돈에 휘둘려 탐욕과 신기루를 좇아 명멸하는 군상들이 그려진다.
작가는 “우리는 100여년 전 일본 제국주의에 휘둘렸지만 지금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돈의 노예가 돼 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는 “구한말과 36년간의 일제 식민지 시대는 우리 역사의 개기일식기”라며 “국치 100년을 맞아 번영 천년을 소망하면서 이 글을 썼다”고 말했다.
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