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주은] 커피 한 잔만 더
입력 2010-04-22 18:37
밥 딜런의 노래 ‘One More Cup of Coffee’를 들으며 출근했다. ‘떠나기 전에 커피 한 잔만 더’라고 애원하듯 부르는 후렴구가 이상하리만큼 가슴에 사무치는 날이다. 창 바깥엔 부슬부슬 비가 내려 연분홍 꽃잎들이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조금만 더 곁에 머물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이지 커피 한 잔만 더 하고 떠날 수는 없는지.
아침부터 노래에 심취한 탓인지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는 중에도 귓바퀴에는 후렴구가 계속 맴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준비한 자료화면에 차 마시는 여인들을 그린 그림이 등장했다. 내 의지와는 별개로 미술사적 설명에 개인적인 감상이 자꾸만 끼어든다.
“이 그림에서는 사소하면서도 차분한 일상의 즐거움이랄까, 뭐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차를 마시면서 세월을 몸으로 천천히 느껴볼 수 있으면 참 좋겠네.”
그림하고는 상관없이 이러쿵저러쿵 차와 커피에 대한 여담이 이어졌다. 동서양 구분 없이 교양 있고 시간적인 여유가 많은 귀족에 의해 차 문화가 발달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본래 귀족들의 티타임은 정원에서의 피크닉을 의미했다. 출출한 오후에 은은한 불빛과 밴드 스탠드 음악이 있는 정원에서 꽃향기를 맡으면서, 버터 많은 빵과 달콤한 파이 등을 차와 함께 먹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반면 노동자들에게 있어 티타임은 다음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가지는 잠깐의 휴식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 노동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차와 커피는 소풍이 아닌 휴식의 의미로 완전히 굳어지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 집중력이 떨어져 사고가 잦아지자, 공장주는 오후 한 차례의 휴식 시간을 공식으로 허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그 시간동안 모두들 럼주를 마셔대는 바람에 일의 효율성이 더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럼은 금지되고 휴식시간은 ‘티타임’ 또는 ‘커피브레이크’라고 불리게 되었다.
차 이야기는 이쯤 하고 그림설명으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마무리를 지었다. “요즘 우리는 귀족스런 티타임은커녕 노동자의 티타임도 스스로 못 챙기고 하루를 그냥 보낼 때가 많아요. 시간의 흐름에 대해 느끼고 생각할 여유가 적어졌다는 뜻이야. 꽃이 피었나 하고 잠시 스치면서 봤었는데, 어느새 꽃잎비가 내리잖아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조차 알 수 없는 횡설수설에 학생들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을 뿐이었다. 아침에 밥 딜런을 들은 게 실수였다.
닭이 알을 품듯 시간을 한번 폭 품어 봤으면 좋겠다. 시간 따로, 머리 따로, 몸 따로 살지 않고, 생각을 뭉근히 익히면서 살 수 있도록 말이다. 설익은 생각들만 겉돌고 흰 화면엔 한 줄도 채워 넣지 못했는데, 주머니에서는 부르르 문자가 들어온다. “선생님, 4시가 원고 마감입니다. 알고계시죠?” 오, 제발 커피 한 잔만 더….
이주은 성신여대 교수 미술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