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核 보유국’ 줄다리기

입력 2010-04-22 21:44

북한과 미국이 핵보유국 씨름을 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이 비망록을 통해 ‘다른 핵보유국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핵군축 노력에 참가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미국 측은 21일(현지시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양측이 새로운 주장을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미묘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 비망록은 핵태세검토(NPR)보고서 발표, 제1차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 등 미국의 핵 정책에 대한 대답이자 다음달 핵확산금지조약(NPT) 8차 평가회의를 겨냥한 입장 표명이다. 미국의 새로운 핵 정책은 핵테러와 핵확산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전제로 국제적인 핵전파 방지와 핵물질 안전관리 노력에 참여할 뜻을 밝혔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외견상 미국 핵 정책에 동조하는 입장을 내보임으로써 북·미 직접협상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세계 비핵화’를 강조한 것이나 ‘비핵국가들에 대한 핵무기 사용 또는 위협을 하지 않는 정책’을 언급한 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주도하는 ‘핵 없는 세상’ 정책과 비슷하다. 이런 입장을 내보임으로써 국제사회의 핵확산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 9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언급한 ‘북한의 1∼6개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뜻도 있다.

북한이 다른 핵보유국들과 핵군축을 논의하겠다는 것도 사실상 비핵화를 논의하는 6자회담보다는 미국과 직접 핵문제를 협상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게리 세이모어 백악관 대량살상무기(WMD) 정책조정관은 워싱턴DC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의 강연을 통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이는 6자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도 공유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단언했다. 또 북한이 명백히 국제규범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도 정례브리핑에서 “새로운 주장도 아니며, 핵무기 보유국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축했다.

워싱턴은 북한이 이 시기에 이 같은 입장을 내보이는 게 핵무기를 매개로 북·미 직접협상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으로 파악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세이모어 조정관은 “6자회담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이뤄낼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대북 압박과 외교적 노력을 병행하는 ‘전략적 인내’를 계속하겠다는 점을 밝혔다. 크롤리 차관보도 북한이 6자회담으로 돌아와야만 현재와는 다른 북·미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밝혔다. ‘6자회담이 열리든 말든 세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북한의 입장에 대해 미국은 6자회담 복귀 외엔 대안이 없음을 못 박은 것이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