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대출 부실로 허덕이는데 감독당국선 ‘규제 폭탄’… 저축은행 사면초가

입력 2010-04-22 21:21


지난해 대주주가 400억원의 현금 증자를 실시, 경영 정상화 시동을 걸었던 충남 지역의 A저축은행.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영업 환경이 악화됐으나 자기자본을 확충한 뒤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이에 따라 이 은행의 총 자산은 지난해 말 1조6415억원으로 1년 만에 7617억원이나 증가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백억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부실화됐고 대형 시중은행들에 가계대출 고객을 빼앗기면서 당기순손실은 1년 만에 4배 넘게 늘어났다.

저축은행들이 진퇴양난이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PF 대출 부실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감독 당국의 몰아치기식 규제가 이어져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다. 여기에 시중은행들이 개인 신용등급 7∼10등급의 저신용자 대출을 늘리면서 주 거래고객층마저 빼앗기고 있는 형국이다.

◇벼랑끝에 내몰린 저축은행들=금융감독 당국이 저축은행 업계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안에 자산 규모 2조원을 초과하는 10곳을 포함, 전체 105개 저축은행 가운데 40여곳에 대해 종합검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22일 밝혔다. 금감원은 부동산 PF 대출의 건전성 관리 실태를 중점 점검하고 동일인 여신한도 초과 등 법규 위반 행위가 적발되면 엄중 제재할 방침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최저치를 5%에서 7%로 상향 조정하는 등 저축은행의 재무 건전성 기준을 은행 수준으로 강화하고 부동산 PF 대출 비중도 제한하는 내용의 규제를 발표했다.

금융감독 당국의 전방위 압박은 사실 저축은행들이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부동산 PF에 올인하다 저축은행 연체율은 2008년 6월 말 14.0%에서 지난해 말 13.2%로 하락했다가 올 2월 말 15.7%로 다시 올랐다.

부동산 PF의 투자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대부업체 수준의 고금리 대출을 하다가 감독 당국으로부터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다.

◇업무영역 확대 등 살길도 터 줘야=저축은행 업계는 감독 강화 방침에 대해 수긍하면서도 한꺼번에 몰아붙이는 식의 규제 강화가 불러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실제로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저축은행들이 본격적으로 자금 회수에 들어갈 경우 당장 급전이 필요한 저소득층 가구는 대부업체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게 된다. 돈줄을 죄는 만큼 대출 금리가 상승해 가계의 이자 부담은 늘어난다. 근근이 버티고 있는 건설사 등 중소기업의 자금난도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 중 만기 도래하는 부동산 PF 대출은 20조원 규모다.

이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저축은행들이 자생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 문을 닫은 전일저축은행은 부실 조짐이 뚜렷했으나 감독을 소홀히 해 부실을 키운 측면이 있다”면서 “정작 감독이 필요할 때는 관심을 두지 않다가 문제가 터지자 황급히 규제만 강화하는 데 급급한 모양새”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서민 금융 지원 기관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업무 범위를 지방은행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저축은행은 펀드, 신탁상품, 연금저축, 신용카드, 외환업무, 해외송금 등은 취급하지 못하고 있다.

배병우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