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교회 이미용선교회 ‘美사랑’, 은퇴 성도들 이·미용 직접 배워 “전도는 곧 사랑” 찾아가는 봉사
입력 2010-04-22 20:55
“여기가 자꾸 뻗쳐서. 그런데 이거 황송해서 어떡해?” 한 80대 노부부가 머리를 다듬어주는 ‘미용사’에게 건넨 말이다. 뭐가 그렇게 황송한 걸까?
서울 지하철 신용산역(역장 김상술)에 ‘무료 미용실’이 생겼다. 이들 노부부는 이곳에서 커트를 했다. 그런데 미용실 분위기가 여느 곳과 다르다. 간판도, 미용 관련 장비도 없다. 신용산역의 비어 있는 매표소에 거울을 설치하고 의자를 놓아 미용실로 만든 것이다. 미용사도 50∼60대 지긋한 분들이다.
이들은 서울 이촌동 충신교회(박종순 목사) 이미용선교회 ‘미(美)사랑’ 회원이다. 지난달 미용 봉사를 위해 ‘신용산역점’을 오픈하고 ‘고객과 함께하는 사랑의 이미용 봉사’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매달 둘째와 넷째 목요일 오후 1∼4시 커트 봉사를 한다. 주로 노인이나 일용직 노동자, 교회 성도들이 고객이다. 가끔 노숙인도 찾아온다.
고객에겐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남성의 머리는 남성 미용사가, 여성 머리는 여성이 맡는다. 30여분 동안 정성을 다하는 이들의 노고에 고객은 깊은 고마움을 표시한다. 어떤 이가 “어디서 오신 분들이에요?”라고 묻자, 성악가 출신의 이혜순(62) 집사가 “충신교회에서 나왔어요. 봉사하는 거예요. 다음달에 또 오세요”라고 답한다. 그럼 “아, 교회에서 나오셨구나”라고 화답한다.
美사랑은 “전도는 곧 사랑”이라고 외친다. 이들은 신용산역 외에도 구로동 조선족교회, 용산구 내 요양원과 노인복지관에도 정기적으로 나간다. 이정자(65) 권사는 “요양원에 가면 노인들이 특히 머리 만져주는 것을 좋아한다”며 “마치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애틋한 마음에 더 정성을 쏟게 된다”고 말했다.
美사랑이 생긴 건 3년 남짓 전이다. 평소 봉사활동을 강조해온 박종순 목사의 말씀에 美사랑 회장 이웅표(64) 장로는 ‘퇴직 후엔 봉사하며 살자’고 다짐했다. 그러던 중 ‘이지연 더스타일’의 이지연 원장이 이·미용 봉사팀 모집 공고를 냈고 부부가 함께 등록했다. 이 원장은 일주일에 한 차례 3시간씩 커트와 파마 기술을 가르쳤다. 18명의 회원은 이 장로처럼 대부분 은퇴한 권사 집사이다.
‘충신미장원장’으로 불리는 변정희(60) 권사는 “처음에는 장로님을 비롯한 남성 회원들이 머리 만지는 것을 쑥스러워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누구보다 열정을 갖고 봉사한다”고 귀띔했다. 美사랑이 활성화되자 이 장로는 미용재료 등을 후원했고, 교회에서도 봉사할 수 있도록 샴푸실을 설치했다. 이 때문에 용산구 지역 노인과 농아인들이 ‘충신미장원’으로 찾아와 파마를 할 수 있게 됐다.
직접 자격증을 취득한 회원도 있다. 태국국제항공사 상무이사로 정년퇴직한 김요한(65) 집사는 “집 근처 복지관에 가서 이·미용 봉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자격증이 없어 안 된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지난해 이용사 자격증을 땄다”고 말했다. 오경숙(50) 집사도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찌 보면 편안하게 노년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현장에서 땀을 쏟는 봉사를 택했다. “봉사를 통해 삶 속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오히려 감사했다.
10년 전 간암에 걸린 뒤 신앙생활을 시작한 신용산역 점장 김종완(69) 집사는 “체면을 따지던 내가 지금은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기쁨이 샘솟고 그러다보니 건강도 되찾게 됐다”며 “지금은 이·미용 봉사가 현직”이라고 말했다. 시간만 나면 필드로 달려갔다는 김요한 집사는 “봉사를 시작한 뒤로는 한번도 골프채를 잡은 적이 없다”며 “대신 내 손엔 항상 커트 가위가 들려 있다”며 활짝 웃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