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검찰 vs PD수첩

입력 2010-04-22 17:48

오래 전 옛 재정경제원 시절 예산실에 근무하던 모 국장에게 들은 이야기. 예산심의 기간에 경찰청 고위 간부로부터 신규사업 예산을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뻑적지근한 저녁식사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전체예산이 너무 빠듯해 어쩔 수 없이 모두 삭감했다고 한다. 며칠 후 정부 예산안이 확정 발표된 날 밤 정부청사가 있는 과천 일대와 서울로 통하는 남태령에 이르기까지 음주단속 경찰이 쫙 깔렸단다. 앙갚음에는 그렇게 자신이 갖고 있는 무기를 사용하는 법이다.

“정권과 권력을 위해 일하는 한 줌밖에 안 되는 정치검찰이 벌인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진에게 지난 1월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린 후 조능희 담당PD가 한 말이다. 말과 표정에 한이 묻어났다. 긴급체포와 압수수색, 보직해임 등이 태풍처럼 몰아쳤고 그러면서 PD수첩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리고 몇 달 뒤인 지난 20일 검찰은 사상 최악의 위기에 빠졌고 PD수첩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날 방영된 PD수첩 ‘검사와 스폰서’는 폭로 내용도 메가톤급이려니와 진행방식도 지나치리만큼 가혹했다. 치밀한 취재로 검사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맸고 스폰서 정씨와의 비밀스런 통화내용을 그대로 내보내 처절한 모멸감까지 안겨줬다. 비리 폭로가 언론의 역할이긴 하지만 맺힌 한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몰아붙였을까 싶다. PD수첩은 다른 언론사에 미리 보도자료를 보내 이들을 지원군으로 끌어들이면서 시청률도 높이는 이중효과 전략을 폈고 이는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방송 후 검찰에는 비난이, 제작진에는 지지가 쇄도했으니 PD수첩의 완벽한 승리요, 통쾌한 복수다.

PD수첩이 검찰에 복수하기 위해 이를 취재, 방영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하필이면 PD수첩인 것이 묘하다. 만약 스폰서 정씨가 이곳저곳 쑤신 것이 아니고 PD수첩을 특정해서 제보한 것이라면 대단히 영리한 사람인 게 분명하다.

관전자의 시각에서 흥미로운 것은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검찰의 반격이다. 워낙 큰 펀치를 맞아 당분간은 힘을 쓰지 못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제3자에게도 PD수첩이 필요 이상으로 가혹했다고 느껴지는데 당사자인 검찰이야 오죽할까. 방송계에서 검찰수사의 단골 대상이었던 예능 PD들에게 조만간 불똥이 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면서 우리 사회가 발전한다는 생각도 들고.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