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오종석] 한·중 FTA 성공하려면

입력 2010-04-22 17:49


이명박 대통령의 검토 지시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국으로 한·중 FTA 필요성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양국은 2007년 3월 산·관·학 공동연구를 시작한 이후 2008년 6월까지 5차례 회의를 했다. 하지만 아직 최종 연구결과는 도출되지 않은 채 지지부진한 상태다. 농산물 등 몇몇 현안에 있어 서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측면도 있다.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우리 정부가 다소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홍콩·마카오(CEPA·무관세 교역활성화)를 포함해 8곳과 FTA를 체결했다. 올해 초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FTA를 발효시킨 중국은 오는 6월 대만과도 경제협력협정(ECFA)을 맺을 예정이다. 양안(兩岸)간 협정이 맺어지면 대중 무역에 있어 상당부분 대만과 경쟁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선 적잖은 품목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 대통령의 지시는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중국과의 양자 관계를 고려해도 FTA 협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형편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그동안 정상회담 등에서 FTA 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 달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는 다시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단순한 경제협력 문제의 차원을 벗어나 지역 정세적으로 필요성이 커진 측면도 있다. 중국은 아시아 전체를 통합하는 아시아공동체 건설의 주도권 확보 차원에서도 한국 및 일본과의 FTA에 더 적극적이다.

이런 정황들을 감안할 때 한·중 FTA 협상은 빨리 시작될 필요가 있다. 관련부처에서도 대통령의 지시 이후 서두르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서둘러 무조건 협상에 나서는 건 경계해야 한다. 철저하게 사전준비를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회의에 참석했는데 깜짝 놀랐다. 정부 관계자는 물론 다른 참석자들도 중국의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더라.” 몇 년 전 산·관·학 공동연구와 관련한 회의에 참석했다는 한 인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토로했다. 중국의 현지 사정, 향후 한·중 간 무역트렌드 변화 등을 무시한 채 과거자료만 갖고 논의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3∼4년 전에 비해 한·중 간 FTA 협상 상황과 조건은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중국은 엄청난 변화를 거듭했다. 과거 중국은 ‘진입장벽의 시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FTA 검토 과정에서 관세율 양허 등 주로 상품무역 분야에 치중했다. 이제 중국은 ‘정착장벽의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이미 많이 개방된 상황에서 ‘투자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한 이후 어떻게 정착하느냐’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중 무역구조가 완제품 수출이 아니라 원부자재를 수출해 제3국으로 내보내는 가공무역의 특징이 있는 만큼 공산품보다 서비스무역과 무역투자 자유화 확대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국 내수시장 진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삼성 등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중국에 진출한 2만여 우리 기업들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공식 규제와 비공식 규제사항인 ‘잠규칙(潛規則)’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잠규칙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 농수산 분야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등 국내적 상황도 철저히 분석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중국은 낮은 수준에서부터 높은 수준까지 8곳과 FTA를 체결하면서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경험과 협상전략에서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정부는 당장 중국이 맺은 8건의 FTA에 대한 분석부터 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 어떤 전략을 갖고 있으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등에 대해 파악하고 우리의 전략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협상 과정에서 자칫 중국에 끌려갈 수도 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베이징=오종석 기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