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 교수의 ‘온도 발명하기’ (원제:Inventing Temperature)

입력 2010-04-22 18:00


1983년 미국 보스턴 인근 사립학교 노스필드 마운트 허먼 스쿨 기숙사에는 각 층 복도에 공용 전화가 한 대씩 있었다. 벨이 울리면 누군가 방에서 나와 전화를 받고 해당자를 찾아 바꿔줘야 했다.

한국에서 건너가 이 학교 10학년(고1)에 편입한 열여섯 살 소년은 영어로 걸려오는 전화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벨 소리가 듣기 싫어 항상 먼저 전화를 받은 뒤 “잠깐 기다리라” 하곤 아무 방이나 두들겨 미국인 학생을 바꿔줬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전화를 받고 아무 방이나 두들긴 뒤 자기 방에 들어가 있는데 누가 그의 방문을 세게 두들겼다. 문을 연 그에게 미국인 학생은 “이거 네 전화야”라고 했다. 이 소년이 영국 런던대학(UCL) 교수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 과학사·과학철학과 석좌교수로 초빙된 장하석이다.

런던 유학 시절 낯선 영국영어로 이뤄지는 세미나에 스트레스를 받던 필자에게 장 교수는 이런 일화를 들려주며 격려했다. 장 교수와의 첫 인연은 90년대 중반 전자우편으로 시작됐다. 필자가 학부 시절 경외심을 갖고 읽은 책의 저자가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으로 옮겼다는 소식에 갑작스럽게 영국 유학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그 학자가 스탠퍼드에서 키워낸 한국인 제자라기에 무작정 연락해 본 것이다. 필자는 LSE에서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행운을 얻었고, 마침 UCL에 부임한 장 교수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장 교수의 하버드대학 박사후과정 때 지도교수는 제랄드 홀튼이라는 저명한 과학사학자였다. 스탠퍼드에서 과학철학을 전공한 장 교수가 왜 과학사학자와 공동연구를 할까, 당시에는 꽤 궁금했었다. 궁금증은 런던에서 장 교수와 “영국 사람들은 왜 미지근한 맥주를 멀쩡한 자리를 놔두고 서서 마시나”와 같은 잡담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장 교수는 과학철학자로서는 매우 드물게 과학사 학술지의 논문상을 탈 정도로 뛰어난 논문을 쓰는 과학사 연구자이기도 하다. 물론 과학철학자 중에서 과학사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과학사학자 중에서 과학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두 분야 모두에서 장 교수만큼 탁월한 연구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철학자와 역사학자의 학문적 취향이 얼마나 다른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장 교수가 학자 사회에서 상당히 특이한 존재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장 교수의 연구 스타일은 과학사와 과학철학 양 분야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토마스 쿤(1992∼1996)의 그것과 닮았다. 쿤이 그랬듯이 장 교수도 플로지스톤 이론처럼 과거의 패배한 이론이, 당시 이용 가능했던 경험적 자료나 이론적 근거에 입각할 때, 설득력에 있어 결코 승리한 산소 이론에 못지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과학자 대다수가 산소 이론을 선택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로지스톤 이론을 지지했던 과학자들이 단순한 오류를 범했다든지 고집불통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상반된 경험적 증거와 다양한 이론적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쟁이론 중 한 이론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절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지극히 합리적으로 그 선택과정을 수행하고서도 여전히 서로 의견이 다를 수가 있다. 물건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과제를 생각해보자. 정리에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마다 그 방을 ‘나름대로’ 정리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그 과제를 맡기느냐에 따라 결과는 꽤 달라질 게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정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과학철학계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라카토슈상을 받은 장 교수의 저서 ‘온도 발명하기(Inventing Temperature)’는 쿤적 사고를 보다 확장해 온도 측정의 역사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해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섭씨 온도를 사용하고 미국은 화씨를 사용한다. 이처럼 온도, 즉 뜨거움과 차가움의 정도를 측정하는 방식은 임의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물리학자에게는 윌리엄 톰슨이 제안한 절대온도라는 개념이 있다. 섭씨 -273도를 절대영도로 하는 이 온도 척도는 이후 켈빈경이 된 톰슨이 특정 물질의 속성이나 측정 방법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온도를 ‘절대화’시키겠다는 생각에서 열역학적 분석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장 교수는 꼼꼼한 과학사 연구와 그에 대한 명쾌한 분석을 통해 절대온도 이전의 다양한 온도 측정의 과정이 무지하고 혼란스러운 것이었다기보다는 지금까지도 해명이 되지 않는 새로운 현상을 많이 밝혀낸 의미 있는 과학적 작업이었음을 우선 지적한다. 그리고 절대온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조차 톰슨은 여전히 자연에 대한 형이상학적 가정이나 규약적 요소들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음을 설명한다. 절대온도의 성립 과정은 절대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과학 이론이 자연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잡아내고 있는 것만큼이나, 그 이론을 만드는 과학자 개인의 과학관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 교수의 ‘전화 일화’는 꽤 효과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도 영국 악센트의 묘한 울림이 정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을부터 케임브리지로 둥지를 옮기는 그가 더 큰 학술적 성취를 이뤄내길 기대한다.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