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석의 아웃도어] 자리 싸움

입력 2010-04-22 17:51


봄비 내리는 4월, 서늘하지만 춥지 않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요즘 같은 주말에 캠핑장 한쪽에 자리 잡고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감상하며 즐기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은 낭만이요 삶의 즐거움이다. 이것보다 더 여유로운 삶이 있을까. 지난주에 있었던 각박한 회사 일은 과거지사가 되고 여유와 사색만이 있을 뿐이다. 비록 세상이 살기 힘들고 여러 가지 책임이 어깨 위에 있겠지만 캠핑장에 있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자연과 동화될 수 있다.

최근 들어 많은 사람이 주말 캠핑을 즐기고 있다. 휴일 고속도로에서는 캠핑 장비를 실은 차를 많이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공인된 캠핑장만 250여개 있다. 텐트 20∼30동 규모의 작은 캠핑장도 있고, 전북 무주 덕유대 야영장처럼 한꺼번에 텐트 4000동을 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곳도 있다.

많이 알려진 캠핑장 몇몇 곳에서 요즘 자리싸움이 심하다. 일부 캠핑 명당은 교통, 주변 볼거리, 시설 등에서 다른 곳보다 우수하기 때문에 사람이 몰린다. 그러나 자리싸움의 진짜 원인은 딴 데 있다. 동호회들이 자리를 선점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캠핑장에서 관리인이 자리싸움에 휘말려 주먹질까지 오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캠핑장 관례상 먼저 와서 자리 잡은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는데 늦게 온 동호회에서 자리를 비켜달라고 한 모양이다. 결국 텐트 칠 자리 하나 때문에 싸움에 휘말려 주말을 망친 것이다.

캠핑장은 여관이나 콘도처럼 호수가 있는 게 아니다. 먼저 온 사람이 좋은 자리를 잡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의 경우 캠프 사이트마다 번호가 있어 예약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 역시 번호가 있는 자리를 예약하는 게 아니다. 먼저 온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다. 번호는 단지 구역을 표시하는 수단일 뿐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캠핑장을 두루 다녀봤지만 우리나라 캠핑장만큼 시설 좋고 깨끗한 곳은 드물다. 우리나라 캠핑장은 아무리 외진 시골에 있어도 재래식 화장실을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 캠핑장 중에는 아직도 재래식 화장실이 많다. 그만큼 우리나라 캠핑 환경이 좋다는 얘기다.

지난 주말, 꽃놀이 인파를 피해 경기도 북부의 호젓한 캠핑장을 찾았다. 조용히 앉아 봄바람을 즐기고 있는데 차 한 대가 와서 여기저기에 물건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늦게 오는 사람들이 있어 텐트 칠 곳을 미리 찜해 놓은 것이란다. 본인은 이곳에 지키고 있어야 한다며 투덜댔다.

우리나라에는 캠핑할 곳이 많다. 일부 유명 캠핑장을 제외하면 연휴에도 텅텅 비는 캠핑장이 많다. 자리를 미리 찜해두는 노력 대신 남들이 찾지 않는 호젓한 곳을 물색하는 게 더 보람 있는 일이라고 귀띔해주고 싶다.

<아웃도어플래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