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그녀가 만난 것은..
입력 2010-04-22 15:19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결코 예수님을 만날 수도, 따를 수도 없습니다.”
[미션라이프] ‘먼 그대’의 작가 서영은(68)씨. 그녀가 최근 산티아고를 도보 순례한 책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를 펴냈다. 한국 문단의 거목이었던 고 김동리의 3번째 아내, 30대에 혜성같이 나타나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을 휩쓸었던 화제의 여성 작가. 그 서영은이 66세에 순례의 길을 떠났다. 유언장까지 쓰고 떠난 길이었다. 책은 40여일에 걸친 순례의 기록이다. 노란 화살표는 앞서간 순례자들이 그려놓은 표지.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을 산티아고로 인도한다. 서영은은 그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 화살표가 가리킨 곳에서 자신을 벗어 던졌다. 그 길에서 그녀는 하나님을 대면했다.
이 책은 산티아고까지 도보 순례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여행기로서도 탁월하다. 그러나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여류 소설가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맛깔 나게 묘사한 수필집이 아니다. 이 책은 믿음의 책이다. 여기에는 분명한 영적 코드가 있다. 그 영적 코드를 읽지 못하면 책에 담긴 깊은 뜻을 알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전율감까지 느꼈다. 이 책은 한 인간이 믿음의 본질을 향해 피를 철철 흘리며 가는 신앙의 여정기다. 인생 산맥 길을 걷다가 마침내 온전한 믿음을 향한 강을 건넌 사람의 절절한 이야기가 거기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그녀는 하나님을 만났다. 그분은 나귀를 통해서 신비스럽게 다가오셨다. 나귀는 하나님의 사자(使者)였다. 그 분을 만난 그 순간, 서영은은 강을 건넜다. 21세기의 히브리인(강을 건넌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하나님을 만난 순간, 서영은은 ‘변했다’. 그녀를 감싼 존재의 원형질이 바꿔졌다. 신자가 되었다.
그 변화는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녀 깊숙한 곳에는 영원을 향한 끊임없는 희구가 있었다. 일제시대 신학을 전공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그녀는 인생의 순간마다 절대자를 외면했다. 심지어 그분을 부인까지 했다. 17세 소녀시절부터 접한 문학에서 구원을 찾았다. 한국 문단의 거목 김동리는 그녀에게 신과 같았다. 굳건한 지지대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문학은 절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안에 구원은 없었다. 거센 지지대였던 김동리가 허무하게 무너졌다. 휘청거리며 쓰러졌을 때 그 손에 쥐었던 모든 것, 업적과 자랑이 모래같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문학이 절망이 되고, 반석 같은 지지대의 허물어짐을 목격했을 때, 죽음이 어른거렸다.
그때,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서영은은 교회로 인도됐다.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지난 17년 동안 그녀는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크리스천이었다. 그녀 마음속에 잠재된 영성의 씨앗은 언제나 갈구했다. ‘아,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그 간절한 소원의 성취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이뤄졌다. 그 분은 표적으로 다가오셨다. 이적은 한 번이면 족했다. 그 분을 만난 순간, ‘내 인생에서 더 이상 표적을 구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렇다. 비교할 수 없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인간에게 더 이상의 표적이 어찌 필요하겠는가.
하나님을 만난 이후 그녀는 자신을 감쌌던 수많은 인연들을 벗어던졌다. 타인에 대해서는 자존자(自存者)가 되었다. 오직 하나의 인연만 간직했다. 세상을 던진 순간, 그녀는 한분 하나님에 대해서 철저한 의존자(依存者)가 되었다. 자유함을 얻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그 경험을 했다. 그 분을 만나면서 믿을 수 없는 꿈만 같은 사실들이 ‘믿어’졌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는 욥의 고백은 서영은의 고백이 되었다. 돕는 인생이 될 것을 결심했다. 내 인생의 화살표를 좇는 삶에서 타인의 화살표가 되는 삶을 추구하게 됐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통로로만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 진심은 지금 실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책에는 처절하게 믿음의 본질을 좇다 마침내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만난 서영은의 영적 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서영은이 걸은 길은 우리가 걸어야 할 바로 ‘그 길’이다. 참으로 귀한 책이다.
다음은 서영은과의 인터뷰.
서영은 책에 이렇게 썼다. “나는 지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내면적 변화를 이끈 초월적 존재를 보고 만졌다.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하나님을 만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는 그녀를 최근 만나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격정적인 것은 없다. 그녀와의 만남은 긴 울림을 줬다. 믿음의 본질, 구원, 사랑 등에 대한 분명한 개념 정립이 되어 있었다. 서영은의 이야기는 어떤 신학교에서도, 강단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귀한 영적 가르침이었다.
믿음의 본질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십자가로 나를 죽이는 것, 내 삶 전체를 찢는 것”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라고 하셨을 때 그분은 믿음의 본질에 이르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그것은 자기를 철저히 찢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진리였다. 그렇게 사는 것만이 진리고, 나머지 모든 것들은 진리 밖의 일이라는 구분을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셨다.
“우리의 현실적 토대는 잠시 있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현실적 토대를 삶 전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지금 자의식이라는 고치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 고치를 찢고 나와야 비상하는 것처럼 우리의 자의식을 철저히 찢어야 그 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고치를 찢었다. 그 고치를 찢는 길은 두렵고 힘든 순례의 길이었다. 일단 찢고 나니 거칠 것도, 얽매일 것도 없었다. 오직 진리만 따라가면 됐다. 그 길을 따라가다보니 가장 의롭고 진실된 것을 성령께서 저절로 드러나게 해 주셨다.
그녀는 복음을 혼잡케 하는 모든 것들을 비수로 찔러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시선, 그것이 말씀이었다. 그 시선을 통해 자신을 봐야 했다. 말씀 아닌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지는 그 시선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말씀 아닌 어떤 것들도 비수로 찌를 때에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인생에서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하나님 모를 때는 회한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니 그 회한이 기쁨과 축복, 은혜로 반전됐습니다.”
서영은은 ‘인생의 터닝(Turning)’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개는 죄를 뉘우치는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전 삶의 방식에서 완벽한 터닝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터닝이 없으면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귀가 열리고 눈이 떠지지 않는데, 이전의 삶의 방식이 전부인 것처럼 살고 있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나 공생애 행적이 이해되겠습니까. 터닝이 바로 십자가더라고요. 자기 찢어짐 없이, 자기는 고스란히 뒤로 남겨 놓은 채 눈가림해서는 결코 그 분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자기입니다. 지금 자기가 자기에게 비수를 꽂아야 합니다. 자기 안의 비본질적인 것, 거짓 속임수에 비수를 꽂고 끊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결코 예수님을 만날 수도, 따를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서영은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됐느냐”고 질문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질 수 있게 바닥에 내 마음을 까는 것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진리 체험을 온 몸으로 하고 난 뒤에는 그 일 이상 중요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은 오직 그 분의 뜻이 지나가는 통로가 되겠다는 생각 외에는 없습니다.”
서영은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무엇을 찾았는가. 사랑이었다. “사랑을 찾았어요. 사랑은 섭리였습니다. 그 섭리 안에 우주의 절대 질서가 있었습니다.” 문학가적인 깊은 말이 이어졌다. “목숨이 간당간당 할 때까지 물어뜯는 것이 사랑이더라고요. 하나님의 사랑은요.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히 찢어져야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번 순례길에서 알게 됐습니다. 그 사랑을 알고, 체험하며 나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것이 저의 구원이었습니다.”
서영은은 지금 하나님의 영적 파이프가 되는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을 자꾸만 내려놓으면서 하나님의 통로가 저절로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단다. 길에서 만난 작은 자들, 동물과 식물, 우주의 모든 것을 향해서 자꾸만 축복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작가 서영은이 하나님을 만났다. 그녀가 완전히 변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통로로 살고 있다. 한 인간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것. 이것이야말로 온 우주가 떨 위대한 일이 아닌가.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