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암살조 2명 검거] “수차례 신분 위장… 살해후 투신자살 하려 했다”
입력 2010-04-21 21:44
잠입훈련서 검거까지… 신문서 밝혀진 사실
북한 노동당 전 비서 황장엽씨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된 간첩 동명관(36)과 김명호(36)는 인민무력부 정찰국(현 정찰총국) 전투원 출신으로 2004년부터 6년간 본격적으로 공작원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몇 차례 신분 위장과 잠입 훈련 끝에 한국에 들어왔으나 국가정보원의 합동 신문과정에서 기존 탈북자와의 대질 끝에 신분이 탄로났다.
◇군사학교 졸업 뒤 정찰국 전투원으로=동명관과 김명호는 각각 함북 화대군과 함남 함흥시 출신으로 지역 내 군사학교를 졸업했다. 둘은 그해 9월 나란히 인민무력부 정찰국 전투원으로 선발돼 산하 훈련소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후 96년까지 ‘마동희 군사대학’에서 영어, 혁명역사, 군사훈련을 받았고, 육·해상 침투 훈련 등 전투원 교육도 이수했다.
동명관은 이후 정찰국 ‘577소’ 산하 비밀전투 단위인 1과에 배치됐고 김명호는 3과로 갔다. 동명관은 99년 상위, 2002년 대위, 2004년 소좌로 진급했으며 그해 12월 정찰국 산하 대남공작부서 ‘717부(2006년쯤 설봉지도국으로 개칭)’ 부장인 대좌 황호로부터 공작원으로 선발됐음을 통지받았다.
김명호는 상등병에서 출발해 2003년 소좌로 진급했다. 그는 1997년 서해 해상 침투로 개척 작업에 공을 세워 국기훈장 3급을 받기도 했다. 김명호는 당시 한국에 잠입하는 서해상 루트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으나 실제로 침투하지는 않았다. 김명호는 2003년 두 차례 중국에 침투해 옌지(延吉), 룽징(龍井) 등을 답사했다. 동명관과 김명호는 98년 나란히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신분 위장과 침투 훈련=동명관은 2005년 1월부터 평양 소재 15호 초대소에 수용돼 한국에서 출판된 ‘들으면 말이 되는 이보영의 120분 영어회화’라는 어학 교재로 영어회화 학습을 받고 잠입을 준비했다. 2006년 4월부터는 공작담당 지도원인 중좌 박중광으로부터 ‘김일성주의 대외정보학’ 등 교재를 이용해 정치사상과 대남 침투 대비훈련 등 공작원 교육을 받았다 그해 8월 박중광과 설봉지도국 국장 조일우로부터 “함흥시에 살다 사망한 김명혁으로 신분을 위장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동명관은 김명혁의 가족사항을 암기하고 근무했던 곳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또 함북의 한 광산에 위장 취업해 대남 침투를 준비했다. 그는 위장 여권을 이용해 지난해 5월 중국 지린성 룽징시로 들어가 운송업체에 취업하는 등 중국 침투 및 현지 적응 훈련을 마쳤다.
김명호는 2004년 당시 정찰국장 현영철로부터 대남 공작원 임명 사실을 통보받고 충성맹세를 거쳤다. 이후 전문 공작원 교육을 이수했다. 김명호는 2007년 담당 지도원으로부터 “함흥시 출신 김명삼으로 신분을 위장하라”는 지시를 받고 가족관계를 암기하고 주소지를 답사, 철저하게 신분을 위장했다. 김명호는 2008년 12월부터 중국 침투 방안에 대해 중점적으로 훈련을 받았다.
◇‘황장엽 처단’ 명령 받고 마지막 만찬=황씨 살해 명령은 정찰총국장인 상장 김영철(64)로부터 직접 받았다. 김영철은 지난해 11월 21일 평양 만경대구역의 한 초대소에서 만찬을 열고 이들에게 “남조선에 침투해 황씨를 제거하라”고 명령했다. 김영철은 “황씨의 친척으로 위장하는 것이 좋겠다”는 지침도 내렸다. 김영철은 김명호를 공작조장으로 지명하고 중국 침투로 안내와 중국 내 연락책 접선 임무를 맡겼다.
이후 동명관은 신분을 황씨의 친척 중 황영명(35)으로 위장하려 했으나 군대 경력이 복잡하고 군사비밀이 많이 포함돼 ‘김명혁’의 신원에 성만 바꿔 ‘황명혁’으로 바꿨다. 이후 “북한에서 황씨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승급하지 못해 남조선행을 택하게 됐다”는 잠입 구실을 만들었다.
이들은 만찬 이튿날인 11월 22일 지도원 2명의 안내로 초대소를 출발해 함남 원산·함흥, 함북 청진을 거쳐 24일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침투했다. 동명관과 김명호는 옌지로 이동해 중국 내 연락처인 일명 ‘장 사장’을 만나 국내 잠입 방법을 논의했다. 이후 탈북 브로커의 안내를 받아 태국 방콕을 경유해 지난 2월 4일과 1월 29일 각각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 잠입했다.
◇건장한 체격과 거짓 진술로 들통=동명관과 김명호는 탈북자 심사 및 수용시설인 경기도 시흥
소재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수용돼 심사받는 과정에서 ‘신원사항 및 학력, 경력, 탈북경위’ 등에 대한 신문관의 집중 추궁을 받았다. 다른 탈북자들과 달리 체격이 좋고 기존 대북 정보와는 다른 진술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위장한 인적사항과 같은 지역 출신의 탈북자와 대질신문 과정에서 신원과 학력, 경력이 거짓으로 밝혀지자 “북한 정찰총국 소속 대남공작원으로서 황씨 처단 등 임무를 부여받고 국내 입국했다”고 자백했다. 이들은 “황씨를 만나면 살해한 뒤 투신자살하려고 했다” “황씨 친인척으로 신분을 위장해 정착하면 황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추궁이 계속되자 자해를 시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사전에 황씨의 소재, 동선, 병원 등 국가기밀인 황씨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 외에도 국내 각종 정보를 탐지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동명관과 김명호는 맨손으로 2∼3명을 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 암살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는 국정원 소속 무술요원과 법정 경위 3명이 배치되기도 했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북자에 대한 합동 신문을 강화하는 법령 개정작업에 착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에 대한 공안당국의 경호도 강화됐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