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현수막 무료 제작·배포… 평택 ‘일신 그래픽스’ 봉하훈 사장 “천안함, 그 아픔에 동참하고 싶었을 뿐”
입력 2010-04-21 18:26
옥외광고물 제작업체 ‘일신 그래픽스’ 봉하훈(36) 사장은 천안함 승조원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싶다는 인근 학교들에 추모 현수막을 무료로 만들어 주고 있다. 주문을 받아 만드는 현수막이 하루 한 건에 못 미치는 봉 사장이지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로 추모 대열에 동참했을 뿐이라고 했다.
20일 경기도 평택시 통복동 사무실에서 만난 봉 사장은 “아들과 남편, 형제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고, 동료를 잃은 장병들의 상심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며 “단지 그 아픔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천안함 침몰 사고가 나고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사업이 잘 안 돼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기부 같은 건 할 형편이 안 됐어요. 상술로 볼까봐 제 가게 이름으로 현수막을 걸기도 뭣하더라고요.”
그러던 중 지난 16일 평택 포승중학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천안함 희생자를 추모하는 현수막을 만들어 학교 정문에 걸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봉 사장은 다른 일을 다 제쳐놓고 추모 현수막을 만들었다. 검정 바탕에 흰색으로 ‘천안함 희생장병들의 명복을 빌며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라고 적어 넣었다. 오후 10시쯤 완성하자마자 차에 싣고 포승중으로 달려갔다. 거의 한 시간 거리였다.
자정 무렵 작업을 마친 봉 사장은 포승중에서 건네는 돈을 받지 않았다. “다른 데도 아니고 사고를 당한 해군 제2함대사령부와 자매결연한 학교여서 그냥 해줬어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고 봉 사장은 말했다. 그는 같은 날 천안함 추모 현수막을 주문한 평택 현화고등학교에도 무료로 만들어 배달했다.
봉 사장은 대학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했다. 졸업하고 서울에서 영화 포스터와 앨범 표지를 만들던 그는 1998년 이모부 사업을 도우러 평택으로 이사했다. 이모부 밑에서 옥외광고업을 배웠다.
독립해 사업을 벌인 지 올해로 4년째. 사정은 녹록지 않다. 한 달 현수막 주문은 많아야 20여건이다. 봉 사장은 “대단한 신조는 없지만 모질게 살기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평택=글·사진 노석조 기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