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진실] 가슴 죄는 탈북자들… “너희 북한, 왜 이래?” 동료 농담에도 움찔

입력 2010-04-21 18:12

“너희 북한, 왜 이래? 천안함에 탄 사람들이나 죽이고. 왜 남한에 피해를 주느냐고.”

모 건설업체 A과장은 웃으며 탈북자인 직원 김모(47)씨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농담 반, 진담 반인 듯 하는 말이었지만 김씨는 웃을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듯, 그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동료들의 시선이 예전 같지 않아 그는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고가 북한 소행이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해지자 탈북자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이들은 남북 간 충돌이 격화되면서 탈북자들에 대한 차별이 심해질까 우려하고 있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토로한다.

탈북자들이 가슴을 죄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탈북자들은 남북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해지는 걸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2002년 연평해전 때도 ‘너네 나라는 구제불능이다’라는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대화 중에도 몇 차례나 한숨을 쉰 NK지식인연대 서재평 사무국장은 북한이 침몰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확인될 경우 어떤 후폭풍이 닥칠지 벌써부터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탈북자들로 구성된 평양예술단에서 성악을 하는 김민용(가명·40·여)씨는 지난 2일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산수유꽃축제에 초청받았다. 그러나 평소 호응과 달리 관객 몇 명만이 박수를 치는 객석을 보며 무대에서 조용히 내려왔다.

김씨는 “사람들이 물병을 던지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3일 전에 갑작스럽게 공연 취소를 통보받은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 단체는 천안함 침몰 이후 6건의 공연이 취소됐고, 단원 3명이 탈퇴했다. 월 소득은 120만여원에서 20만여원으로 줄었다. 또 다른 단체인 새터민평양민족예술단도 공연 5건이 취소됐다.

남한에 갓 정착한 탈북자일수록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A교회 김성태(가명·43) 목사는 탈북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쟁이 촉발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최근 그는 북한에 있는 이모와 통화했다. “천안함이란 군함이 침몰해 수십명이 죽었어요. 나라꼴이 말이 아니라요.” “그런 일이 있는 기야? 처음 듣는다야….” 북한 주민들은 중국에서 구입한 휴대전화와 중국 기지국을 이용해 탈북자들과 정보를 교환한다.

탈북자들은 초기부터 사고 주범으로 북한을 지목하고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김시연(가명·28·여)씨는 “김일성 시대에는 김정일이 그나마 정치·사회에 관심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테러에 집중하고 있다. 죽기 전에 전쟁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차모(42·여)씨도 “지난 15일이 김일성 생일이었는데, 북한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닐까요?”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남한에 정착한 신세대 탈북자들은 비교적 유연하게 대처하는 경향이 강하다.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은 스스로 ‘남한 사람’이라는 자아 정체성이 강하다. “남북관계가 안 좋을 때마다 (탈북자인) 저와 연관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남한의 초기 대응 미숙이 아쉽습니다.” 동국대에 재학 중인 이모(28·여)씨는 완벽한 서울말로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박유리 최승욱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