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황장엽씨 암살공작원뿐일까

입력 2010-04-21 18:11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를 암살하려고 남파된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2명이 20일 구속됐다. 공작원들은 지난해 11월 김영철 정찰총국장으로부터 직접 “황장엽의 목을 따라”는 지령을 받고 탈북자로 위장해 중국과 태국을 거쳐 지난 1월과 2월 각자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 중 한명은 황씨의 친척으로 행세했으나 꾸며낸 인적사항과 동일한 지역 출신 탈북자와 대질신문 과정에서 정체가 드러났다고 한다.

황씨 암살 시도는 1997년 2월 15일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씨 암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씨는 1982년 스위스에서 한국대사관을 통해 귀순, 얼굴 성형수술까지 받으며 숨어 살았지만 북한의 암살공작조에 의해 경기도 분당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살해당했다. 범행 시기는 황씨가 북한을 탈출한 때와 겹친다.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황씨도 제거할 수 있다는 위협이기도 했다.

북한 인터넷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5일 황씨에 대해 “도적고양이처럼 숨어다니지만 결코 무사치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암살예고로 볼 수 있는 이 말이 이번에 검거된 암살공작조를 염두에 둔 협박이었을 것이다.

북한이 황씨 암살을 지시한 때는 북한 요청에 의한 제3차 남북정상회담 접촉설이 한창 퍼질 때다. 겉으로 유화책을 펴면서 뒤로는 남북관계 경색에 아랑곳없이 암살작전을 세우고 있었던 셈이다. 겉과 속이 다른 북한의 행태가 또 한번 드러났다.

친북 정권 10년 동안 검거된 간첩은 단 1명이었다. 간첩이 없어서 잡지 못한 게 아닐 것이다.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하다시피 하고 누구 입에 들어가는지도 개의치 않고 대북 퍼주기를 하는 상황에서 수사관들이 간첩 잡을 엄두를 냈겠는가.

그 사이 탈북자를 위장한 간첩, 고정 간첩, 자생적 종북파, 얼치기 친북파가 얼마나 성장해 사회 각 분야에 침투해 있을지 계산도 못할 상황이다. 천안함 격침과 관련해 일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북한을 두둔하는 궤변을 펴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당국은 지금부터라도 암약하는 간첩들을 발본색원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