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의 깜짝 한수] 비씨카드배 준결승 ● 이세돌 9단 ○ 김기용 5단

입력 2010-04-21 17:44


봄은 심술쟁이다. 쉽게 내어주질 않는다. 어느 날은 방심한 얇은 옷 속으로 차가운 바람을 넣어주고 어떤 날은 따사로운 햇빛이 아낌없이 쏟아지며 벌써 여름이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변덕스런 날씨 덕분에 기분도 들쭉날쭉 종잡을 수가 없다. 4월에 들어서면서 한국기원에서도 흐드러지게 날리는 꽃잎처럼 쉴 새 없이 시합이 벌어지고 있다. 한꺼번에 몇 개 씩 벌어져 시합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다. 몸에 밴 직업병 탓인지 어제도 오늘도 눈에 띄는 기발한 수를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여러 대국들을 둘러본다.

지난 주에 이어 이세돌 9단의 바둑을 소개하기로 한다. 상대는 침착함과 냉정한 계산으로 꾸준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김기용 5단(이유는 모르겠지만 동료들 사이에서 ‘할배’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세돌의 바둑을 보면 초반 실리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상대방의 허점을 찔러 싸움을 할 때 유리할 수 있는 요소의 곳에 늘 돌이 놓여 있다. 이것이 천하를 거느릴 수 있는 그 만의 힘이 아닌가 싶다.

이번 바둑도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초반의 독특한 감각으로 익숙하지 않은 진행을 보여주며 실리는 조금 모자란 듯 진행된다. 그러던 중 포석단계가 마무리 되며 중반전투로 접어들 즈음 드디어 강력한 잽을 날린다. 실전도의 흑1. 축, 장문이 되지 않으면 일단 다 끊고 본다는 어느 기사의 말처럼 우선 상대의 돌을 분리시키고 보자는 수다.

딱 보기엔 흑의 진영이 엉성하게 얽혀 도저히 싸움을 걸 수 없는 상황일 것 같은데 상대에게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에 백도 고심 끝에 생각해 낸 백2가 좋았다. 참고도의 흑1∼9까지의 진행을 보자. 실전도 백2의 끼움이 없었다면 그저 분리되어 곤란했을 모양인데 이 끼움의 효과로 백10∼12까지 흑 두 점을 잡아 우선 분리된 상변의 백을 확실하게 살려 놓을 수 있다(흑1을 10의 곳에 두면 백3으로 끊어 흑1로 딸 수밖에 없을 때 백2로 끊어 흑봹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이후 흑13으로 뛰어 우변으로 이어지며 공격과 타개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상귀가 통째로 흑 집으로 굳게 되어 아직 어려운 형세지만 기세로 볼 땐 흑이 유리한 흐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결국 흑이 4집반을 이겼고, 이 판 승리로 이세돌 9단은 복귀 후 첫 세계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정말 대단하지 아니할 수 없다.

<프로 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