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바라보는 개·돼지 “참 희한하게 사네”… 최석운 작가 개인전

입력 2010-04-20 18:21


휴대전화를 걸며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낀 채 입을 벌리고 서로에게 기댄 채 자는 남녀, 제딴에는 한껏 멋을 냈지만 촌스러운 색깔의 패션에 정강이까지 양말을 올려 신은 아줌마, 축 늘어진 배를 드러낸 수영복 차림으로 등장하는 파블로 피카소, 섹시함은 온데간데없이 뚱뚱한 이미지의 메릴린 먼로….

일상에서 관찰한 사람이나 동물들의 모습을 우화처럼 그리는 작가 최석운(50)의 작품은 익살스럽다. 하지만 웃음 속에는 세상에 대한 풍자가 숨어있다. 유명인이든 그렇지 않은 인물이든 한꺼풀 벗기고 보면 다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의 그림에는 바닥에 엎드린 채 사람들을 곁눈질하는 개와 돼지도 등장한다.

“그림 속 인물들이 왜 모두 째려보고 있느냐고요? 뭔가 불만이 있으니까 그렇죠. 개와 돼지 등 동물 그림은 이들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동물을 쳐다보지만 반대로 개와 돼지가 인간을 바라보는 주체가 돼 ‘너네들 참 희한하게 산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1980년대 숨막히는 정치사회 현실 속에서 웃음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작가는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처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그림을 그려왔다.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 미술판의 고고한 그림들에 답답함과 염증까지 느꼈다는 그의 그림은 다분히 낙천적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아픔과 상처가 깃들어 있다.

서울 논현동 갤러리로얄에서 5월 14일까지 여는 그의 개인전 ‘나는 잘 있다’는 역설적으로 ‘나는 사실 잘 못살고 있다’는 반어법이자 ‘너는 어떻게 사느냐’는 안부이기도 하다. 욕실용품 제조업체인 로얄&컴퍼니에서 2007년 개관한 갤러리로얄(관장 김세영)의 출입구 위에 FRP로 작업한 ‘돼지가 나를 본다’ 등 25점이 소개된다.

문인들과 교류가 많은 작가는 최근 출간된 성석제의 소설 ‘인간적이다’의 표지를 비롯해 신춘문예 당선작의 삽화 작업을 해왔다. 지난 주말에는 생년월일이 똑같은 성석제와 함께 제주도로 ‘웃음이 있는 문학미술기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문학을 해학적인 그림으로 풀어내는 최석운의 작품은 어른을 위한 동화이자, 뼈있는 농담과 풍자로 바라보는 일상이다(02-514-1248).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