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차은영] 회복기의 복병, 가계 빚
입력 2010-04-20 19:02
이상 기후나 아이슬랜드의 화산 폭발과 같이 크고 작은 공급충격이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미국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서서히 경기회복세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성장률을 상향조정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을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심한 지병을 앓고 있을 때는 모두가 긴장해서 매일매일 상태를 점검하고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결과에 대비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고비를 넘기고 나면 환자도 보호자도 의사도 긴장이 풀리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 하는 것은 회복기이다. 회복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완전하게 건강해질지 시름시름 장기간 고생할지 아니면 다시 악화되어 버릴지가 결정된다.
이제 겨우 산소 호흡기를 제거할 정도의 기력만 회복했다고 봐야 하는 세계경제에 비해 우리경제는 완연한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다. 회복기를 잘 보낸다면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도처에 잠재해 있는 복병들도 만만치 않음이 사실이다. 특히 경제위기 속에서도 꾸준히 늘어난 가계부채가 회복기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2 금융으로 이동한 대출
한국은행에 의하면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한 가계부채 잔액이 2009년 말 현재 약 734조원에 달한다. 작년 전국 가구의 평균소득이 1.5% 증가한 데 비해 가계부채는 전년 대비 6.6% 증가한 것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86.5%로 OECD 회원국 평균 70%보다 높고, 최근 국가파산 위기를 겨우 면한 그리스의 62%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가계들은 부채축소를 위해 노력해 온 반면에 한국에서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잠재적 불안요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작년 9월 145%에 달해 미국이나 영국보다도 훨씬 높고, 2004년 이후 매해 10% 포인트씩 증가해왔다는 사실은 장기적으로 우려할 만하다.
가계대출이 대부분 주택담보대출과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부동산시장이 장기적으로 침체할 경우 복합불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이나 미국과는 달리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로 인해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지만 ‘2월중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동향’에 의하면 상대적으로 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 제2금융권으로 주택담보대출이 이동하면서 계속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만약 금리를 인상시키는 출구전략이 실행될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경기가 활성화되더라도 소득증가가 당장 나타나기는 어려운데 부채는 급속하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금리기조를 필요 이상으로 유지할 경우 차입비용의 감소로 인해 주택담보대출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문제는 단기에 해결하기 어렵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폭발력을 갖는 뇌관이 된다. 우선 공공부문이 주도하던 고용창출을 민간부문이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지출에 의한 효과는 잦아들고 있는데 민간부문이 쌓아둔 이윤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다면 고용 증가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저소득층 집중 관리해야
둘째, 주택가격 폭등으로 인해 여전히 대출이 매력적이면 부채를 줄일 수 없다. 부동산시장의 안정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규제만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셋째, 소득대비 부채비율이 높은 저소득계층을 집중 관리해야 한다. 고소득계층일수록 자산도 많을 것이기 때문에 부채의 상대적 심각성이 크지 않지만 저소득층은 그렇지 못하므로 부채비율을 높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가계도 시류에 휩쓸리는 것보다 소득과 자산 규모에 맞는 대출을 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