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바이블] 장애인에 대한 하나님의 뜻
입력 2010-04-20 17:31
장애인들은 동정 대상 아닌 부흥의 씨앗
20일은 유엔이 제정해 세계가 공동으로 지키고 있는 장애인의 날이었다. 특히 올해는 30회가 되는 더욱 뜻 깊은 날이었다. 사실 기독교는 장애인을 통해 부흥하고 성장했다고 할 만큼 장애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이 약속을 믿고 기도한 120명이 성령을 충만히 받아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데서 교회가 탄생하고 복음이 온 세상에 퍼지게 돼 오늘의 기독교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성령 받은 제자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중증장애인에게 말씀을 들려주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켜 고쳐주었다는 점이다. 바울은 1차 세계전도 시 루스드라에서 중증장애인이 말씀을 듣는 믿음을 보고 가까이 가서 고쳐줌으로써 “신이 우리에게 내려오셨다”는 대우와 함께 선교사역에 큰 도움을 받게 됐다(행 14장).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전도할 때도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을 고쳐주자 많은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니 큰 기쁨이 넘치게 되었다(행 8;6∼8)
어떤 의미일까. 한국교회는 이 중요한 사실을 안타깝게도 간과하고 있다. 성령 받은 자의 사명, 교회의 사명, 목회자들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강하게 말씀하신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시 핍박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신앙 유지조차 어려울 때 이처럼 장애인들을 사랑해준 사건들을 계기로 감동 받은 무리들이 몰려들어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로마 군인들이나 핍박자들이 사역자들을 처단할 수 없게 되었다고 사도행전 4장 21절은 밝히고 있다.
이는 장애인을 통해 이루고자 하신 주님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장애인들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명하신 말씀을 이뤄드리는 일일 뿐 아니라 목회자나 교회에 이렇게 유익함을 확실히 예시해 주는 것이다.
예수님 공생애 사역의 중심에 장애인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세례 요한이 순교하기 직전 제자들을 통해 “당신이 메시아가 확실한가”라는 질문을 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대답하셨다. 요한은 이 말씀을 듣고 그가 메시야임을 확신하고 기쁨으로 순교했다(마 11장, 눅 7장). 예수님이 메시아이시고 교회가 교회 되는 확증을 장애인들을 통해 이루어주셨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장애인들이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을 통해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시며, 장애인들이 창세 전 예비한 복을 받게 하는 통로임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선한 사마리아인을 예로 들면서 “너도 가서 이같이 하라”고 하셨다. 성만찬을 베푸실 때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내가 본을 보였으니 너희도 가서 이같이 섬기는 사람이 되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제30회 세계장애인의 날을 계기로 교회와 목회자들, 전 기독교인이 관심과 뜨거운 애정으로 주님의 섭리를 새겨보았으면 좋겠다.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드리는 귀한 도구이며 교회의 가장 유익한 존재다. 편견과 차별은 하나님께 큰 죄악임을 고백하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시기와 질투, 갈등과 대립, 교만과 이기심으로 변질된 한국교회가 장애인들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 회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기록된 말씀이 현실의 기적으로 재현돼 한국 기독교와 교회들에 놀라운 부흥이 다시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양원 목사 (신망애재활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