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은혜 (13) 서독대사 부인시절 ‘한국의 밤’ 대성황

입력 2010-04-20 17:20


1957년 5월 손원일 제독은 서독 대사를 제안받았다. 외국 상선을 타던 항해사 시절 2년간 독일을 드나든 적이 있어 남편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 제의를 수락했다.

독일에 도착한 첫날, 남편은 원양 항해사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내가 독일 거리를 다니는데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지. 어찌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던지. 검은 머리에 황색 피부인 내가 그들 눈에는 신기했던 모양이야.”

“지금은 시간이 흘렀으니 그 정도는 아니겠죠?”

“그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대사인데, 적어도 같은 사람으로는 대해주겠지.”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독일의 많은 사람들은 한국인에 대해 그리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한국전쟁 직후라 독일 신문, 잡지에는 온통 깡통 든 코흘리개 한국 고아들의 사진으로 가득 찼다. 마치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불쌍한 아이들 모습을 신문 등으로 보듯이 말이다.

한국은 고아들의 나라이고, 가난하고 문화가 없는 후진국이며, 한국에서 잘사는 사람은 모두 도둑놈이라고 알고 있었다. 나는 항변하고 싶었다. “지금은 전쟁 직후라 좀 가난한 것뿐이다. 우리나라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달래기 위한 혼잣말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왔다. 국제부인회 회장이 한국을 소개하는 ‘한국의 밤’ 행사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날부터 한 달여 동안 한국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도록 밤새워 머리를 굴렸다. 요즘 같으면 전문적인 예술단체에 맡겨 행사를 치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나와 유학생들, 주변의 한국인들이 직접 기획하고 공연 프로그램을 짰다.

1시간 남짓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배경은 한국의 대청마루를 그려 붙였다. 서독 대통령 부인, 장관 부인, 외교관 부인 등 300여명이 행사를 보기 위해 참석했다.

서투른 독일 말을 줄줄이 외워 5분간 행사를 소개했다. 이어 정월 초하룻날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는 모습, 곱게 한복을 입은 어린이들의 동요 열창, 고구려 백제 신라 때의 여성 의복 패션쇼, 소년 소녀가 봄나물 캐는 율동, 전통 결혼식, 춘향전의 ‘사랑가’ 듀엣, ‘밀양아리랑’ 합창 등을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모두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한국에 이런 문화가 있었나요?”라며 놀라워했다. 이후 독일 신문에 ‘한국의 밤’에 대한 소식이 연일 세 차례나 실렸다. 학생들이 참여한 프로그램으로는 완전무결한 행사였고, “아름답다”고 격찬했다. 우리 고유의 문화를 높이 평가해주었다. 행사 이후 이곳저곳에서 공연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대부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는 점 때문에 정중히 거절했다.

독일에는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행사들이 많았다. 그런 자리에는 늘 각국의 대사 부부들이 초청받아 참석했다. 그런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게 노래였다. 대사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자기 나라의 노래를 불렀다. 한번은 러시아 대사 차례가 되었는데, 자신은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고 했다. 그때 음악을 전공한 내가 그를 대신해 러시아 민요를 불렀다. 이어 한국 가곡을 불렀다. 모두들 감격했다. 한국의 멋을 알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늘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말이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