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문제점 사정없는 칼날 동료들 비판 개혁 강조 힘겨운 싸움하던 교수는 결국…
입력 2010-04-20 17:45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고광률/화남
고광률(49·사진)의 소설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부른다. 조광조는 조선 중종 때 개혁을 부르짖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스러져간 인물이다. 소설 속 주인공도 조광조란 이름이다. 물론 그는 역사 속 조광조는 아니다. 하지만 동명이인이란 설정은 조광조의 개혁성을 소설에 각인시킨다. 그렇게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하기에 독자에게는 메시지가 또렷하게 전해진다.
소설은 한국 대학의 문제점을 사정없이 파헤친다. 문장은 건조하면서 단단하다. 조금의 여백도 허락치 않겠다는 듯 꽉 짜인 구성은 책을 잡는 순간부터 독자의 눈을 잡아끈다.
이야기는 조광조의 죽음에서 출발한다. 그의 장례식장 풍경을 통해 조광조가 대학 개혁을 강조하던 한 지방대학 교수임을 소개한 뒤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되짚어 간다. 작가가 조광조의 입을 빌려 쏟아내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신랄하다 못해 읽는 이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낯 뜨겁다.
조광조가 비판하는 대상은 교육을 둘러싼 모든 주체다.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 머리도 제대로 못 깎는 정치가 백 년 앞을 내다봐야 하는 교육을 능멸한 결과 공교육의 붕괴로 이어졌다”고 정치권을 성토한다. 또 경제 논리를 앞세우는 최근 교육 정책을 향해서는 “정치 논리가 망친 교육은 정치 논리를 뜯어고쳐 바로잡아야 마땅한데, 그건 묻어두고 경제 논리로 슬그머니 도망을 쳤다는 것이다. 경제 논리도 그냥 경제 논리가 아닌 자유시장 경제 논리로 도망을 침으로써 향후 발생할 모든 문제를 시장의 책임으로 돌리려고 한다는 것이었다”라고 비판한다.
교수들도 그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작가가 조광조의 입을 빌려 말하는 교수는 “시간강사 때 마련한 강의노트 한 권으로 정년까지 버티는 사람들, 일단 전임이 되면 이 제자 저 제자들의 글을 긁어모아 자신의 연구 실적으로 둔갑시키는 사람들, 또 이나마도 어려우면 여기저기 발표했던 글을 조각조각 나누거나 토씨를 바꿔 저기에 발표하는 사람들, 얼굴 알리기 위해 전공과 무관한 오락 방송 출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또 보직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좇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개혁을 말한다는 것은 개가 웃을 일이 아닌가”라고 한다.
안팎으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조광조는 쇠약해지다가 결국 죽는다. 사고사이지만 그의 죽음은 대학이란 곳이 난공불락의 요새임을 부각시킨다. 그를 조문하는 교수들은 “조광조는 죽어서도 문제다”라고 말한다. 한때 자신들의 안녕을 위협했던 이에 대한 경계심은 그의 죽음 앞에서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대전대 신문사 상임 편집국장으로 재직 중인 고광률은 1987년 ‘호서문학’으로 등단, 시와 소설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