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하나님-배우 이일화] ‘배우=특별한 존재’ 잘난 척 영성 수련통해 오만 깨달아
입력 2010-04-20 17:33
어느새 연기 생활 20년이 흘렀다. 요즘은 SBS 드라마 ‘산부인과’ 후속 ‘검사 프린세스’에 출연하고 있다. 처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극적인 성격을 적극적으로 바꿔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부산 동주여상 2학년 때였다. 우연히 모델선발대회 공고를 보고 한 발 내밀었던 것이 인연이 됐다. “어? 내가 배우랑 좀 맞나?” 여고시절엔 배짱이 두둑했다. 그땐 무엇이든지 도전하면 금방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배우의 길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KBS 탤런트 시험에 떨어지고 의기소침하던 때에 하나님은 다른 방송국으로 안내하셨다. 마침내 1991년 SBS 2기 탤런트가 됐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비해 놓으신 듯 동기들 중에는 믿음이 좋은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을 연발했다. 처음엔 부자연스럽고 이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준비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기를 통해 예수의 향기를 전하라는 사명이었다.
3년 전 심리치료 공부를 하던 중 2박3일간 영성수련원에 들어가서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다. 일반인과 함께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예인으로서 일반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리면서 지낼 수 있을까 걱정하던 순간, 모든 걸 내려놓게 하는 일이 터졌다.
눈에 가시가 들어간 것처럼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가려워 참을 수 없었다. 무턱대고 손으로 문지른 것이 화근이었다. 연예인의 얼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갛게 부어올랐다. 설상가상으로 눈의 핏줄이 터져서 괴물 같은 얼굴이 됐다. 하나님은 그때 소중한 것을 알게 하셨다. 잘난 척 하다간 큰 코 다친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또한 배우라는 직업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가르쳐 주셨다. 흉한 얼굴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기도를 드렸다. 얼마 후 하나님은 거짓말 같이 치료해 주셨다. 이전 보다 더 맑고 하얀 얼굴로 회복시켜 주셨다.
이날부터 연기에 임하는 태도가 180도로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연기로만 생각하고 열정을 쏟았다. 하지만 이 일을 겪은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얼굴을 닮은 연기를 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나의 연기와 눈물, 미소를 보면서 많은 이웃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5년 전부터 동참하고 있는 ‘사랑의 밥차’ 봉사를 하면서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밥차 봉사는 아무리 일정이 바빠도 거르지 않는다. 빈틈없는 스케줄로 너무 힘들어 그만 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그만 둘 수 없었다. 한겨울 찬 수돗물에 설거지를 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손이 시렸다. 그러나 돌아오는 발걸음은 늘 행복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 손이 시린 만큼 그분의 가슴은 따뜻해진다는 생각을 하면 기운이 절로 난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