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상 6관왕 ‘허트 로커’ 언제 터지나… 전쟁보다 무서운, 그 두려움
입력 2010-04-20 17:52
올해 아카데미 6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허트 로커’는 이라크 전쟁이라는 흔한 소재를 독특한 관점에서 접근한다. 민감한 사안을 다루면서 미국식 전쟁 영웅 따위는 등장시키지 않는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한다.
하루하루 폭탄 테러의 공포 속에 지내고 있는 미군도, 이라크인들도 불편한 상황에서 불안해하는 인간일 뿐이다.
영화는 폭탄제거반(EOD)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실제로 이라크에서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은 불안함을 극대화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사용된다.
영화는 EOD가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불발탄 제거를 위해 작업을 하던 도중 팀장이 폭파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새로 부임한 팀장 제임스는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활약하며 800개 이상의 폭탄을 제거한 전문가. 하지만 독단적이고 무모한 작전으로 동료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제임스는 폭탄을 제거할 때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 불에 탄 차 트렁크에서 폭탄을 한 무더기 발견하고 이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빠지자 그는 보호 장구를 모두 벗어던진다. 그러고도 태연하게 일을 수행한다. 동료가 “두렵지 않냐”고 묻지만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 그에겐 이 일이 일상과도 같기 때문이다.
‘허트 로커’는 작가 마크 보울이 2004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EOD와 함께 지내며 경험한 것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보울은 대원들이 “폭발물을 처리한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고, 또 한번 그 순간을 경험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임스와 팀원들이 폭탄을 제거하는 장면은 매번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첫 장면에서 폭탄이 터져 죽는 장면을 본 관객으로선 폭탄이 또 터질지 누가 목숨을 잃을지 몰라 긴장하게 된다. 비글로우 감독이 무명배우로 라인업을 짠 것도 이런 긴장감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오히려 가이 피어스, 랄프 파인즈 등 유명배우가 죽는 배역이다. 보통 영화의 문법이라면 그 반대여야 하는데, 이런 점 때문에 관객은 초조할 수밖에 없다.
사실적인 묘사도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비글로우 감독은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사는 군인과 이라크 시민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16㎜ 슈퍼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는 기법으로 배우의 미세한 표정을 담았다. 폭파장면은 슬로우 촬영 기법으로 모래알 하나하나 튀어 오로는 모습까지 표현했다. 폭파 장면에서는 실제 폭발물을 사용했다. 화려함은 떨어질지 몰라도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다는 감독의 판단 때문이었다. 영화는 치안 문제 때문에 이라크가 아닌 요르단에서 촬영됐다. 22일 개봉. 15세가.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